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931 호 1페이지기사 입력 2020년 09월 11일 (금) 07:57

1,700년 전 가야의 유리 세공 목걸이 3건 보물 된다

김해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서 출토 가야의 고유한 장신구 문화 형성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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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지난 9월 7일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양동리고분군에서 출토된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와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목걸이 3건은 '철의 왕국'으로만 주로 알려져 있는 가야가 뛰어난 유리 제품 가공 능력을 보유해 고유한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토 정황이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으며 형태도 완전해 역사ㆍ학술ㆍ예술 가치를 지닌 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1992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의 제2차 발굴 조사 중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에서 발굴되었다. 양동리 고분 270호는 인접한 여러 고분과 겹쳐 있어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으나 고배(高杯, 높다리 그릇)를 비롯해 토기류나 철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중요한 고분으로 꼽힌다.

'김해 양동리 제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多面玉)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曲玉)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약 142.6cm의 길이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으며, 제작 시기는 고분의 형식과 부장품 등으로 보아 3세기로 추정된다.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갈색 등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고,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을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목걸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정(水晶)은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학계의 연구를 통해 경상남도 양산(梁山) 등 우리나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지배계층의 장신구로서, 3~4세기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나, 이 목걸이처럼 100여 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또한, 가공 기법 또한 오늘날의 세공기술과 비교해도 될 만큼 완전성이 뛰어나 당시 수준 높은 기술과 세련된 미적(美的) 감각을 보여준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한 공예품으로서 기술‧예술 수준이 뛰어나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또 다른 목걸이인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 시기 중요한 고분 중 하나인 김해 대성동 76호 고분에서 2011년 발견된 것으로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하다가 목곽묘에서 발견했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되었고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瑪瑙製, 마노는 수정과 같은 석영광물로 원석의 모양이 말의 머릿골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으며, 평균 지름이 6~7mm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은 것으로 보아 여기에 깃들인 가야인들의 시간과 정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종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유리를 곡옥(曲玉)이나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등 조형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당시 유리세공 기술이 매우 우수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조사를 통해 나온 터라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하고, 여러 재료를 정교하게 가공해 색상과 질감을 조화롭게 배치한 가야인들의 수준 높은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금관가야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공예품으로 역사ㆍ예술 가치가 충분한 유물이다.

마지막으로,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이 목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함께 발굴된 유물 중 중국 한대(漢代) 청동 세발 솥(靑銅鼎, 청동정) 등을 통해 3세기경 축조된 금관가야 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경도 7의 단단한 수정(水晶)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曲玉)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은 가야인들의 기술 면모를 보여준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세기 대까지 유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곱은옥(曲玉)이나 둥근옥(球玉)을 만든 목걸이였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는 이러한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하여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도 발굴해서 얻은 유물이라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하고, 수정제 곡옥이나 대형 유리제 곡옥이 한꺼번에 발견된 희귀한 사례로서 중요하다. 또한, 수정을 정교하게 가공한 기술과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이 조화를 이룬 조형의식이 돋보여 당시 장신구 문화의 세련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3세기 금관가야의 지배층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귀중한 장신구로서 보물로 지정할 역사‧예술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가야 목걸이 3건은 각각 개별 유적에서 일괄로 발견되었고, 금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많은 수량의 구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이며, 가야인들이 신분 위상과 지배 계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내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또한, 금‧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 백제인들과 달리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한 가야인들의 생활상과 연관이 깊은 작품으로, 화려함을 추구한 당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2018년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국립박물관에서 신청한 소장품들 중 출토지가 명확하고 가야문화권의 특징이 반영된 유물에 대해 문화재 지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조사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금동관, 부산 복천동고분군의 철제 갑옷, 청동칠두령, 도기 거북장식 토기 등과 합천 옥전고분군의 금귀걸이, 고리자루 큰 칼, 함안 마갑총의 말갑옷 및 고리자루 큰 칼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금관가야 지역 유물이 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가야 목걸이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이 끝나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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