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년 가야의 대외교섭 발표 내용

加耶 出土 土師器系土器의 意義

소속 :
釜山大
발표자 :
申敬澈
작성일
2001-06-02
주로 洛東江下流域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는 嶺南發見의 考古學資料中 加耶와 古代日本의 交涉의 實態를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의 하나로 토기자료를 들 수가 있다. 土師器系土器가 그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이미 武末統一과 安在晧에 의해 정리가 되어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의견중 특히 안재호의 견해는 다소 비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나로수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도 있어 小稿에서는 이 의견의 문제점을 摘出하면서 私見의 일단을 제시해 보려 한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영남발견의 이 土師器系土器를 이 시기의 영남지역-가야·신라-의 토기의 編年과 年代의 설정에 주요근거의 하나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어 이의 適否에 대해서도 한번 짚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최근 신라·가야 토기와 고분의 실연대를 기왕의 연대관 혹은 나의 생각보다도 약50∼60년 정도 올려보는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思考의 底에는 영남출토의 土師器系土器가 유력한 근거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검토는 최근의 이러한 연대관의 視角矯正에는 물론 영남지역 고분의 편년작업과 실연대의 설정, 나아가 이 무렵의 제 문제의 해명에 가장 중요한 기초작업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소고가 겨냥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선 安在晧의 견해를 살펴보고, 土師器系土器와 동반되는 가야토기의 편년을 안정시킨 후, 여기에서 파생되는 몇몇 문제에 접근해 가는 방법을 취하도록 하겠다.

魏晉南北朝時期 東北아시아 國際關係 秩序와 加耶國

소속 :
北京大(중국)
발표자 :
宋成有
작성일
2001-06-02
서기 220년 조비(曹丕)가 왕위에 올라 위(魏)나라를 건립한 때로부터 589년 수문제(隨文帝)양견(楊堅)이 진(陳)을 멸하고 중국을 통일한 때까지를 역사상에서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기하고 한다. 이 기간 민족의 이동·투쟁과 융합을 기조로 동북아시아 국제 관계 질서는 매우 다채로웠다. 그렇다면 위진남북조시기, 즉 3세기 전기로부터 6세기 후기에 이르는 동북아시아 국제 관계의 질서와 특징은 무엇인가? 가야국의 국제 지위는 어떠한가? 금후 어떠한 연구과제들을 사고하고 연구하여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본 논문은 옅은 견해를 서술하려고 한다. 많은 가르침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加耶(가야) 對外交涉(대외교섭)의 展開過程(전개과정)과 그擔當者(담당자)들

소속 :
울산대
발표자 :
백승옥
작성일
2001-06-04
加耶(加耶(가야)) 對外關係(대외관계)사 연구는 加耶(가야)를 주체로 한 연구와 關係(관계)의 상대국으로서 고찰된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對倭(대왜)(日本(일본))관계사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周 (주변) 諸國(제국)을 아우르는 關係(관계)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후자의 경우도 中國(중국) 및 한반도 三國(삼국)(高句麗(고구려) 百濟(百濟(백제)) 新羅(신라))과의 關係(관계) 상대국으로 고찰된 것보다는 所謂(소위) 임나日本(일본)부 문제와 관련하여 日本(일본)의 關係(관계) 상대국으로서의 연구가 그 연원이 오래됨은 물론 양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축적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所謂(소위) 任那日本府(임나일본부)설 이 어느 정도 극복된 단계에서도 日本(일본) 고대국가성립의 문제와 관련하여, 혹은 이른바 '동아시아적 시각속에서의 일본사 추구'라는 1970年(년)대 이후 日本(일본) 사학계내에서의 분위기와 관련하여 가야사는 日本(일본) 고대사학계 내에서 계속적인 關心(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데 기존 가야사 연구의 경우 史料(사료) 자체가 加耶(가야)의 내부적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예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周 (주변) 여러 나라들과의 關係(관계)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부분이 對外關係(대외관계)를 중심축으로 삼아 이루어졌다는 指摘(지적)은 올바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재정리할 必要(필요)성은 있는 것이며, 그러한 정리는 바탕으로 새로운 地坪座標(지평좌표)를 구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加耶(가야)의 馬胄(마주)

소속 :
부경대
발표자 :
이상률
작성일
2001-06-04
본교에서는 현재까지 出土(출토)된 마注意(주의) 유례를 구조분석에 따른 제작법을 바탕으로 새로이 檢討(검토)해보고 궁극적으로는 加耶(가야)마注意(주의) 계보와 발생에 대한 私見(사견)을 간단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私見(사견)의 배경에는 단지 마주 뿐만 아니라 이와 동반出土(출토)된 일련의 마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성과에 기인한 바 크다

三國鼎立抗爭時期-加耶와 倭(大和國)의 관계

소속 :
延邊大
발표자 :
全春元
작성일
2001-06-04
加耶와 古代日本과의 거래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찍이 선사시대인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가야지구의 청동기문화가 稻作文化와 함께 日本으로 이식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건립된 후 가야제국, 더욱이 금관가야를 비롯한 낙동강 하류지역의 가야제국은 백제와 더불어 일본열도의 大和政權과 경제, 정치, 문화, 외교
등의 면에서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가야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이며 또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역사적 현안은 이른바 任那日本府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여기서 저는 주로 三國鼎立抗爭時期의 加耶와 일본열도의 大和政權과의 정치적 관계를 개괄적으로 서술함과 동시에 任那日本府의 실체에 관해 저의 성숙되지 못한 소견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日本列島에 있어서의 國家形成과 加耶

소속 :
日本·國立歷史民俗博物館
발표자 :
白石太一郞
작성일
2001-06-04
煎近代의 日本에서는 中國을 시작으로 한 海外諸國의 그것을 넓게 「カラ(가라)」불렀다. 또 「唐」의 그것을 「カラ」로 읽었다. 이것은 옛날 日本列島에 살았던 倭人들에게 있어서의 外國이라고 함은 즉 가라(加耶)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즉 「야요이」 (彌生)時代) 이래 적어도 5세기 이전에 있어서는 해외의 문물·문화·기술의 대부분은 加耶로부터 日本列島로 가져왔던 것인데, 加耶는 本列島와 동아시아 세계를 잇는 유일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가장 중요한 창구였다. 그 수 百濟를 시작으로 하는 한반도 각국과의 직접교섭이 시작되고 게다가 中國과의 交涉도 빈번하게 됨에 따라 倭人에 있어서의 「カラ」,즉 「外國」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唐帝國 그것을 「カラ」로 불리게 되고, 종국에는 넓게 「外國」의 그것을 가리키고 상태로 되었다. 일본어의 「カラ」의 의미는 加羅→韓→唐→外國으로 확대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カラ」라고 하는 地名 語義의 변천과정에서는 분명한 것처럼 倭國의 형성기에 있어서 동아시아의 문화, 즉 倭國의 文明化의 창구로서 加耶가 한 역할은 엄청나게 크다.
그리고 그 영향은 단순희 文化史的인 것에 그치지 않고 日本列島에 있어서의 國家形成에도 결정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금회 加耶의 對外交涉史中 倭國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보고의 기회가 주어졌으므로, 최근의 加耶地域 및 日本에 있어서의 고고학적 조사·연구성과를 근거로 日本列島에 있어서의 國家形成史의 초기 단계에 있어 加耶가 했던 역할에 대해서 생각되는 바를 발표하고, 비판을 받고자 한다.

가야(伽倻)의 국제환경(國際環境)과 외교(外交)

소속 :
延邊大
발표자 :
全春元
작성일
2001-06-04
이 발표에서는 먼저, 가야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하여 낙랑군 설치 전후의 동향을 참조해가면서 사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음, 이렇게 가야의 지정학적 위치를 전제로 하여, 후기가야의 외교추이를 검토한 뒤, 중요한 劃期(획기)라 할 수 있는 신라와의 관계에 주목해 보고 싶다.
신라는 가야와 마찬가지로 낙동강 유역에 위치하면서, 가야가 4세기 후반부터 백제. 왜와의 연대(連帶)를 중시한 것에 비하여 고구려에 종속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가야제국과는 구별된다. 이 신라가 脫高句麗化(탈고구려화)(이 용어는 井上直樹(정상직수) 씨가 처음 사용한 용어)를 감행하여 百濟(백제) 가야와 함께 고구려에 저항하는 자세를 명확히 한 이 후 가야를 둘러싼 국제환경은 큰 변모를 겪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라가 탈고구려화한 시기를 명확히 하고, 그뒤의 신라 대외정책을 밝힘으로써, 후기 가야의 외교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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