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세기대 가야의 주변제국 발표 내용

漢代 銅鏡의 발전계보 및 한반도 남부 출토 동경과의 관계

소속 :
북경대
발표자 :
高崇文
작성일
2009-04-27
중국 고대 동경은 B.C 2000년 전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이후 상주(商周)시대에 이르기까지는 큰 발전이 없었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이르러 동경의 제작은 보편화되기 시작하며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한대(漢代)의 동경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필수품이 되었으며 주조기술 역시 더욱 정교해졌으며 그 유형과 전파 역시 더욱 광범위해졌다. 또한 서로 다른 발전 유형을 형성하여 동경 계보(鏡系)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서로 다른 동경 계보의 발전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동경의 지역적인 특징과 상호간의 교류를 연구함에 더욱 중요한 의의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마구로 본 6세기대 소가야와 주변제국

소속 :
경상대학교 박물관
발표자 :
류창환
작성일
2009-04-27
소가야는 지금의 경남 서남부지역의 남강수계와 남해안 일대에 있던 여러 가야 정치체의 총칭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산청․진주․고성․사천․하동․의령 일대에 해당한다. 이 지역 고분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소가야양식으로 일컫는 토기문화로, 경남 서남부지역을 동일 문화권으로 묶는 기준이자 대가야나 아라가야와 구별되는 가야 정치체가 이 지역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인 증거이다

백제 聖王代의 加耶 進出과 ‘任那日本府’

소속 :
부산대학교
발표자 :
백승충
작성일
2009-04-27
󰡔일본서기󰡕와 소위 백제3서 가운데 하나인 「백제본기」에만 전하는 ‘임나일본부’는 종래 가야사 연구의 중핵을 이룬 주제였고, 「광개토왕릉비문」 및 칠지도 연구와 함께 왜 혹은 백제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제국과의 정치‧군사관계를 규정짓는 키워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많은 비판과 함께 현재는 왜 혹은 백제의 대외관계사적인 시각이 아닌 가야를 주체로 접근한 시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그 결과 ‘임나일본부’의 사적 의미도 가야사 구성의 핵심 요소라기보다는 남가라 멸망과 이후 안라국의 대외관계 추이 속의 한 편린으로 축소되었다.

횡혈계 묘제를 통해서 본 6세기의 가야와 주변제국

소속 :
일본
발표자 :
吉井秀夫
작성일
2009-04-27
낙동강 이서지역의 횡혈식석실분(도1) 발굴조사의 시작은 진주 수정봉 2․3호분, 옥봉7호분, 김해 삼산리1호분, 고령 折上天井塚 등의 식민지시대의 조사까지 올라 간다. 그런데 그 때의 조사에 대해서는 정식 보고서가 없어서 상세한 조사성과를 알 수 없다. 해방 후, 1960년대에 고령 고아동고분군에서 2기의 횡혈식석실분이 조사된 바가 있다(金英夏외1966, 金元龍외1967, 金鍾徹編1985). 1980년대에는 합천 삼가고분군과 저포리고분군의 발굴조사로 많은 횡혈식석실이 발견되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조영현(1990), 홍보식(1992), 東潮(1993), 岡本健一(1994) 등이 가야의 횡혈계 묘제의 계보와 전개에 대해서 검토했다.

6세기 전반 가야의 교역 네트워크

소속 :
부산박물관
발표자 :
홍보식
작성일
2009-04-27
6세기대의 한강 이남지역은 정치․문화적으로 격변기로서 집단간 또는 정치체간에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 놓여 있었다. 특히 가야를 둘러싼 백제․신라․왜의 움직임은 이 시기의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6세기 전반대는 이 시기의 복잡한 관계를 나타내는 문물들이 각각의 권역에서 확인된다. 가야를 둘러싼 지역간 동향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이 진척되어 왔지만, 6세기 전반대라는 한정된 시기를 대상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6세기 전반이라는 한정된 시기의 가야․신라지역에서 출토한 외래계 문물의 분석을 통하여 6세기 전반가야를 중심으로 한 교역 네트워크를 검토해 가야사회를 보다 동태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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