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와 여의 낭자

작성일
2018-11-23 13: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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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와 여의 낭자 동영상

가야 역사가 살아있는 김해는 이야기가 있는 도시입니다.
여기는 가야시대 집단 칠억이 있던 곳으로 인근에 패총과 주거지 등 가락국 당시에 다양한 유적이 발견된 곳인 봉황대라고 합니다. 예부터 가라대, 망해대, 여의현, 독현, 회현 등으로 불리어 왔으며, 조선 고종 초 부사 정현석(鄭顯奭)이 구름의 생김새가 봉황이 날개를 편 모양과 같다하여 붙여준 이름이 바로 봉황대입니다. 봉황대는 가락국 9대 겸지왕 때 황세와 여의낭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는 어린 시절 황세가 남장한 여의을 수상히 여겨 오줌 누기 내기를 했던 그 소변 터입니다. 그리고 황세와 여의낭자가 약혼한 후 처음으로 놀았다는 바위인 여의좌입니다. 전쟁 후 황세가 장군이 되어 유민공주와 결혼하게 되자 파혼당한 여의낭자는 황세와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24살의 나이로 죽고 맙니다. 그녀의 혼이 들어갔다고 전해지는 하늘 문이라고 불리는 돌문입니다. 이후 출여의낭자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1975년에는 여의각이 세워졌고 매년 여의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이 여기 봉황대에는 남아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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