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김해] 금주(金州)의 위상

작성일
2018-08-28 18:03:45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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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김해의 지역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려 전국을 10도로 나눈 가운데 경주와 함께 영동도(嶺東道)의 주관 행정기관으로 안동대도호부가 두어졌습니다. 둘째, 금주(金州)는 김해지역 이외의 행정구역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의 함안(咸安)·의안(義安, 창원)의 2군(郡), 합포(合浦, 마산)·칠원(漆原, 칠원)·웅신(熊神, 진해)의 3현은 김해의 통제를 받는 행정구역이었습니다. 대체로 낙동강 이남으로 낙동강에서 구마고속도로에 이르는 마산·창원·진해의 지역이 김해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셋째, 문종 때에 정해진 지방관의 녹봉에 의하면, 금주(金州)의 방어사(防禦使)는 울산·예천·양산·안동 등과 함께 100섬을 받았습니다. 같은 때에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 평양)가 270섬, 남경유수(南京留守, 서울)가 200섬이었고, 현재의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개성부사(開城府使)가 86섬 10말이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금주의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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