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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탑상편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조에는 파사석탑의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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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성 호계사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읍이 금관국으로 있을 때 시조 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이 후한 건무 24년 무신(戊申:48년)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동으로 향하려 하다가 수신(水神)의 노여움으로 인해 가지 못하고 돌아가서 부왕(父王)에게 아뢰니, 부왕이 탑을 싣고 가라 했다.
그제야 순조로이 바다를 건너 금관국의 남쪽 해안에 와서 정박했다. 탑은 사면이 5층으로 그 조각은 매우 기묘하며 돌은 옅은 무늬가 있고 그 질이 좋으므로 우리 나라 것이 아니다.
≪본초(本草)≫에 닭 벼슬의 피를 찍어서 시험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

파사석탑 파사석탑
돌배 돌배

이와 비슷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김해도호부 고적 조에도 전합니다. 현재 허왕후릉 앞에는 원형을 잃어버린 채 파사석탑이라고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김해시 중심에 있는 호계천변에 있었던 호계사(虎溪寺)가 1873년(고종10) 폐지되자 김해부사로 있던 정현석(鄭顯奭)이 ‘이 탑은 허왕후께서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니 왕후릉 곁에 두어야 한다’고 하여 옮긴 것이라고 전합니다. 석탑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서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높직한 굄대가 있고 여러 개의 부재를 얹고 있는데 5층탑으로 추측됩니다.

각 부재의 측면에는 다양한 조각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또 옛 기록에서 말한 것처럼 이 지방에서 나는 돌은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도 진해시 용원동에는 허왕후가 타고 왔다는 ‘돌배’가 있습니다. 아마 돌을 실은 배를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후대에 허왕후 설화와 불교가 결합하면서 생긴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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