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읍내의 만세시위

작성일
2018-08-29 10:43:18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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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읍 출신 배동석(裴東奭)은 세브란스의전 학생으로 2월 26일 마산에 내려와 박순천(朴順天)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고,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삼일운동의 학생대표로 활약한 뒤, 선언문을 가지고 김해로 내려와 임학찬(任學讚)·배덕수(裴德秀) 등과 은밀히 의논하여, 3월 30일 밤 10시 읍내 중앙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쳤습니다. 김해 최초의 만세시위였으나 미리 부산에서 파견되어있던 5명의 일본군에게 배동석·임학찬·배덕수·박덕수 등이 검거되었습니다. 가락면 대사리의 허병(許炳)은 최덕관(崔德瓘, 대사) 최계우(崔桂禹, 활천) 조병중(曺秉重, 삼방) 김석암(金石岩, 부원) 송세탁(宋世卓, 진례) 송세희(宋世禧, 진례) 등과 4월 2일 김해장날 거사를 은밀히 모의하고, 자신의 집에서 나무판에 태극기를 새겨 광목에 수십 장을 찍어냅니다. 4월 2일 장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오후 4시경에 시장 십자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싸전에서 고기전으로 달려가자, 60여의 군중이 호응하면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최계우는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었고, 만세시위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일본헌병은 재향군인과 불량배까지 동원하여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에 나섰고, 송세희와 송세탁이 크게 다치고, 허병 등이 헌병대김해분견소로 잡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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