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2일, 김해군 장유면 무계리 장터에는 무려 3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한독립을 외쳤다.
이날 만세운동은 상경해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돌아온 김종훤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들고 귀향한 뒤, 지역 인사들과 뜻을 모으며 계획되었다.
김종훤 선생은 4월 11일 김승태·조순규·이강석·최현호 선생 등과 함께 이튿날 무계리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각자 마을 주민을 동원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일을 분담하였다.
4월 12일, 김승태 선생이 5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장터로 들어오자, 다른 마을에서도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주민들이 모여들었고, 장터는 순식간에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 자리에 김해 출신 인물인 김선오(1865~1919)·김용이(1891~1919)·손명조(1884~1919) 선생도 함께했다.
세 분은 시위 대열의 한가운데에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행진했고, 군중은 헌병주재소를 향해 항거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면서 세 분은 현장에서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부는 세 분의 공훈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또 다른 인물 한임길(출생 미상~1909) 선생은 국권 피탈 이전 의병운동에 나섰던 김해 출신의 인물이다.
1909년 곤양과 하동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된 그는 거짓 진술로 의병과의 회동을 꾸며내 순사들을 속였으나, 하동군 대기 부근으로 압송되던 중 탈출을 시도하다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정부는 그의 희생과 의병 활동의 공훈을 기려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강영갑(1910~미상) 선생은 김해농민조합의 역량 강화를 위한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해 11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김해농민조합 재건을 위해 힘쓰다 다시 2년간 수감되었다.
최덕관(1893~1919) 선생은 1919년 4월 2일 김해군 김해면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해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두 선생의 항일 정신을 기려 각 2018년과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해가 낳은 독립운동가들은 평범한 농민이었고, 청년이었으며, 지역의 이웃이었다.
그러나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앞에 서서 목숨을 바쳤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그분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김선오·김용이·손명조·한임길·강영갑·최덕관 선생.
김해가 낳은 여섯 줄기 불꽃은 꺼지지 않고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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