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을 보내면서 갈수록 급속도로 달라지는 명절 풍속도에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오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모처럼 새 옷과 고무신을 신을 수 있었고, 각종 맛있는 음식과 떡, 고기, 생선, 과일 등을 맛볼 수 있었다. 더불어 세뱃돈까지 받을 수 있어 마냥 기쁘기만 했다.
설 당일 아침 일찍 아버지를 따라 윗대 조상부터 차례를 지냈다. 여러 일가를 돌며 차례를 지낸 뒤 제삿밥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 차례를 지내고 나면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고, 몸도 나른해지곤 했다.
그러고는 쉴 틈도 없이 차례상에 올렸던 제수용품을 챙겨 조상들의 묘소가 있는 산소로 성묘를 갔다. 고인들께 절을 올리고 음식을 조금씩 뿌린 뒤 일부는 나누어 먹고 하산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은 파김치가 되다시피 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최근 설에는 차례를 지내는 집안이 거의 없다. 그저 가족끼리 만나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며 음식을 함께 먹는 정도다. 명절 휴무가 3~5일 연휴로 이어지면 자녀들을 데리고 고궁이나 공원을 찾기도 한다. 아니면 모처럼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친척 어른들이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집안은 윷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같은 전통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가 연휴가 아직 며칠이나 남았는데도 잠깐의 만남을 뒤로한 채 곧장 자신의 거주지로 돌아가 버린다. 이는 어른들을 섭섭하고 서글프게 한다. 부모님들은 피붙이를 만나 반가워하기도 전에 금세 떠나려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음식 준비를 해 놓고도, 자녀와 손주들이 바로 돌아간다고 하면 세상이 어찌 이리도 각박하고 삭막한지 속으로 한탄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겉으로 내색하기는 싫어도 명절 음식과 참기름, 고추, 마늘, 깨, 땅콩, 고구마 등 힘들게 지은 농작물을 가득 챙겨 자식의 차에 실어 준다. 우리 부모님들은 이처럼 자식들에게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주신다. 과연 자식들은 이에 얼마나 감사하고 또 보답하려 하는지 되묻게 된다.
자식들과의 정을 충분히 나누기도 전에 떠나버리는 귀성객들이 대부분이니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서글프겠는가. 아무리 먹고살기 바쁜 사회라 해도 명절만큼은 고향에서 좀 더 느긋하고 여유 있게 부모님과 함께 지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명절은 내 뿌리를 알고 조상께 차례를 지내며 살아 계신 부모 친지를 찾아뵙는 시간이다. 앞으로 이런 자취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사는지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갈수록 효도와 경로 사상이 퇴색해 가는 시대다. 이런 명절이 있기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명절 문화는 분명 역사적·민족적·문화적 가치가 있으며, 앞으로도 보존되고 유지돼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