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786 호 8페이지기사 입력 2016년 07월 01일 (금) 10:53

[5분 자유발언] 박민정 의원 - 김해시의회 제193회 정례회

金海市史 편찬의 당위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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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 자유발언] 박민정 의원 - 김해시의회 제193회 정례회1
▶ 박민정 의원

제193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2016. 6. 27.)

金海市史 편찬의 당위성에 대하여


 반갑습니다. 박민정의원입니다.
 金海市史 편찬의 당위성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큰나무에 이파리가 푸른 것은 땅속에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자양분을 받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삶 또한 우리들 조상들의 힘든 고난으로 일구어 낸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잠시 오늘날 우리들 삶의 행동과 양태(樣態)들을 후일 우리들 후손들이 기억하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떠올려 봅니다. 부끄럽지 않아야겠습니다.
 그 시대의 역사는 우리들이 살았던 과거의 삶의 형태에 대한 기록이나 단순한 옛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과 후대들에게 귀감과 교훈을 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기록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시 해왔고 과거 사서편찬 시 책 이름 끝 부분에 거울 감(鑑)자를 붙인 것도 지난 역사를 교훈과 귀감으로 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金海市史 편찬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好古的 취미가 아니라 김해의 미래를 가르키는 방향타의 한 부분의 설정이라 생각하면서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 의원이 주장하는 김해시사의 편찬은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 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 아래 할 것 없이 지난 역사에서 배우며 교훈으로 삼고 지표로 삼아야겠습니다.
 역사란 지도자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왜곡하거나 곡해한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 또한 아닐 것입니다.

 진실한 사실을 보존하고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지방화 시대에 김해시사의 편찬은 김해시에서 생활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물려줄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7천년 전 가덕도에서 신석기인의 인골 48개체가 출토되고, 5천년 전의 범방 패총에서는 범방아이가 알려졌으며, 4천5백년 전 장유 수가리에 조개무지를 남겼던 최초의 김해인부터, 고인돌의 청동기문화인이었던 고인돌, 아홉촌장의 구간사회를 지나 수로왕이 가락국을 세운지도 2천년이 넘는 가야의 서울에 김해인 스스로 편찬한 김해의 역사가 없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라 할 것입니다.

 김해시는 경상남도 18개 시.군 중에서 근대이후 군지나 시사를 편찬한 적이 없는 유일한 자치단체입니다.

 조선시대 1630년에 <김해읍지>가 편찬되고 1929년에 속간 된 이래 김해군지나 김해시사를 편찬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3년 전 문화원장 이병태선생님께서 <내 고장의 전통>이라는 215페이지의 개설에 불과한 책자를 김해군의 이름으로 간행한 것이 고작입니다.
 창원시는 1988년 市史 편찬 10년만인 1997년에 2,399 페이지의 <창원시사>를 간행했고, 주민수 13만9천명의 통영시는 1986년에 1,507페이지의 <통영군지>, 6만9천명의 함안군 또한 1997년에 1,432 페이지의 <함안군지>, 6만5천명의 창녕군은 2003년에 1,984페이지의 <창녕군사>, 6만3천명의 거창군은 1,910 페이지의 <거창군사>, 5만5천명의 고성군도 1995년 1,610페이지의 <고성군지>, 2만8천명의 의령군은 1983년에 이어 2003년에도 2,365페이지 분량의 <의령군지>를 편찬했습니다.

 경상남도 또한 1988년에 경남도사 상.중.하 3권을 간행하였고 25년 주기로 <경상남도사>의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구 53만에 예산규모 1조 2천억대의 방대한 김해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 자신의 역사를 정리한 적이 없습니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난 날 민선시장 한 분은 시사편찬 대신 백서를 발간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려 백서는 역사가 아닌 통계나 역사자료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관성 없는 토막들로 우리 후손들에게 김해역사의 흐름을 가르치고, 김해의 역사가 결정된 순간들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가락국의 경제적 터전이 김해평야에서“옛김해만”으로 새롭게 밝혀진 것처럼 김해의 인물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연구는 이미 엄청난 축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늦었다고 판단할 때 시작하는 것이 지혜의 발로라 생각합니다. 서두르십시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명멸했던 정권이나 국가의 완성은 해당 역사의 편찬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가야의 <가락국기> 백제의 <서기>, 신라의 <국사> 조선시대의 <고려사>와 <용비어천가> 등의 편찬은 새 정권과 국가완성의 대업이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이정표였습니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진영읍지> <한림면지>, <활천동지> <장유면지>등과 같이 우발적이고 부분적인 편찬은 있었지만 형식적인 편찬위원회 구성등으로 특정인 개인의 저술로 수많은 오류와 시민의 혈세 낭비를 가져왔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김해시의 역사가 통일된 기획 아래 일관되고 사실에 근거를 둔 객관적으로 저술되는 시사가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해시사의 저술로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시금석으로 삼아 차세대 교육을 위한 자료가 됨은 물론, 김해시의 올바른 미래를 제시하는 이정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金海市史를 통해 타 지역과의 차별화는 물론 타지역에서 그 지역 역사를 배운 유입 시민들 그리고 차세대의 교육을 위한 김해만의 차별적이고 독창적인 경제와 문화를 일구어가는 자료로 활용하고 김해시사의 편찬으로 종합 정리되는 우리 과거사는 우리들을 밝은 미래로 안내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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