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770 호 14페이지기사 입력 2016년 01월 21일 (목) 10:13

우리 외할머니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시민기자가 간다

 


회현동 주민센터 앞에 위치한 작은 카페.
올해 여든 다섯의 이태임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라떼는 물론 다섯 가지 종류의 커피를 아주 맛있게 만드신다.
추운 겨울엔 유자차와 쌍화탕도 끓여 주신다. 입담은 얼마나 좋으신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할머니의 옛이야기에는 역사드라마 한 편과도 같은, 아니 더한 감동이 있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는, 아마도 계셨다면 이분과 같이 따뜻한 분이셨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지금부터 나는 이태임 할머니를 우리 외할머니라고 부르겠다.


우리 외할머니는 회현당에 계신다. 회현당은 홀몸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마을공동체로 생명나눔재단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1년 6개월 전 설립했다. 할머니는 여기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신다. 이곳에서는 경남에서 유일하게 안전관리통합인증(HACCP)을 받은 ‘외할머니 참기름’도 함께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참기름을 만드시는 할머니 네 분, 카페 일을 하시는 할머니 두 분. 총 여섯 분이 일을 하신다. 여기에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탠다. 출입구 옆 통유리 너머로는 참기름 제조 시설이 자랑스럽게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고소한 참기름과 구수한 커피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다.


한차례 손님들이 우르르 다녀가고 조용한 오후 시간이 됐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가게가 문을 열 때부터 함께한 우리 외할머니는 몇 년 전 폐지를 주우시다 재단직원의 권유로 일을 시작하게 되셨다. 처음에는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지금은 맛있다며 매일 오는 단골손님도 생겨 보람차다고. 한 가지 미안한 것은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가끔 주문과 다른 메뉴를 만드시는 거란다. 결국 ‘주문 할 때는 큰 소리로! 택도 아닌 것이 나올 수 있음’이라는 팻말을 센스 있게 써 붙이셨다. 베레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신 모습이 귀여운 소녀 같다. 일을 하니 옷도 화장도 신경 써야 해서 사람이 좀 깨끗해지는 것 같다며 웃으신다. 무엇보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으니 생활이 나아지고 위험한 찻길에 나가지 않아서 좋다며 당신에게는 여기가 낙원이라 하신다. 몸무게도 5kg이 늘었다고. 할머니가 좋으니 나도 좋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을 하겠다는 할머니. 가슴 한쪽에 자리한 ‘마음만은 김태희’라는 이름표가 반짝 빛난다.


어느 맛 집 앞에 죽 늘어선 줄처럼 회현당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같은 백세시대에 더 많은 낙원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2016년 올해에는 우리 할머니들의 얼굴에 더 큰 웃음꽃이 피길 기대해 본다.
시민기자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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