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856 호 6페이지기사 입력 2018년 07월 11일 (수) 10:08

양동산성에서 최대 집수지 발굴

영남지역에서 최대급 국가 사적 승격 신청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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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동산성에서 최대 집수지 발굴1

   

   경상남도 기념물 제91호인 양동산성에서 영남지역 집수지(흐르는 물 또는 빗물을 저장하는 지역) 중 최대급인 길이 15.5m, 너비 22.8m, 최대깊이 3.4m인 평면 직사각형의 집수지가 확인됐다.
   양동산성의 집수지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532년 이후에 만들어졌고, 산성의 축조시기 역시 집수지의 시기와 동일할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양동산성 내 집수지와 시기가 거의 동일한 부산의 배산성 내 집수지의 형태가 원형인 점에서 차이가 난다.
   집수지 내부에서는 일상 생활용 토기편들이 다량으로 조사됐고,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철화살촉 2점과 철도끼 1점이 출토됐다.
   이외에 김해의 매장 문화재들 중 잘 출토되지 않는 목간(붓 글씨가 남아 있는 나무조각)과 바가지, 국자 등 생활 목기와 짚신이 출토됐다.
   특히, 목간은 3점이 출토됐는데 이중 1점은 양동산성으로 운송한 곡물 꾸러미에 부착된 짐꼬리표로 확인됐다.
   이 짐꼬리표에 적혀 있는 글자의 기재 방식이 '마을 이름+(사람 이름)+곡물 이름' 순으로 적은 함안 성산산성 부엽층에서 출토한 목간의 기재 방식과 거의 흡사하고, 성산산성 목간에 적혀 있는 '栗村'(율촌)이라는 마을 이름이 양동산성 목간에도 적혀 있다.
   따라서 김해시는 두 지역의 목간을 비교 연구하면 함안과 김해, 나아가 신라와 김해와의 관계 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앞으로 더 정밀한 판독을 위해 추가로 적외선 촬영 등을 시행하고, 학계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양동산성 목간의 정확한 성격을 규명할 계획이다.
   한편, 시는 양동산성 유적을 가야 멸망 이후 김해를 식읍으로 받은 구형왕과 신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 및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고 추가 발굴 및 국가 사적 승격 신청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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