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984 호 16페이지기사 입력 2022년 03월 21일 (월) 09:11

하성자 의원

“일제강점기 김해지역의 소작쟁의 사건”사료 조사 연구용역 실시해 김해농민운동 역사 구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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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회 김해시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존경하는 김해시민여러분, 송유인 의장님과 동료 의원 여러분, 허성곤 시장님과 관계공무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김해시의원 하성자입니다. 올해는 3.1 운동 103주년 해입니다.

본 의원은 “일제강점기 김해지역의 소작쟁의 사건” 사료 조사 및 연구 용역 실시를 통해 김해농민운동의 역사를 조속히 구축해야한다는 내용으로 자유발언 하고자 합니다.

“김해 사람 아니면 감옥소가 빈다.‘ , ’김해사돈 울산 사돈 감옥소에서 만난다.‘란 말이 있었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김해농민들이 농민운동을 일으켜 ”왜놈은 물러가라. 우리 농토 돌려 다오.“라고 저항하며 붙잡혀 가고 울산으로도 번져 대량 투옥된 후 만들어진 말이다.” 김해 원로 문인이신 박경용 선생이 어렸을 때 들은 말을 참고해 쓴 칼럼 내용입니다.

일제 강점기 무라이(촌정) 농장의 악명은 유명합니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가 쓴 “토지수탈자 무라이 기치베와 경남인의 저항” 기사에 보면

“무라이는 1904년 김해군 하계면 진영리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토지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이 지역은 1905년 1월부터 경부선이 개통되었고 5월에는 진영역이 생겨 김해의 중심도시로 성장할 것을 미리 계산해 두었다.

무라이가 현재의 주남저수지를 중심으로 한 창원군 대산면, 동면, 김해군 하계면의 주요토지를 집중 매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토히로부미와 이완용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무라이는 통감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조선인 소유의 토지를 점차 매수해나갔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농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그 보상으로 토지 매수를 보장받아 조선인의 피를 빤 악덕 인물이다.“ 라고 돼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식민지 ‘개발’인가 –경남 진영 무라이 농장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2019년 10월, 봉하마을 강금원 연구소에서 열린 민족문제연구소 학술회 기록이 있습니다.

”무라이 농장은 고 노무현대통령 생가인 봉하마을 근처의 구 진영역 일대에 일본의 신흥재벌 무라이 기치베가 낙동강 일대를 개척하여 1910년대 대규모 농장을 조성했던 지역‘입니다. BC급 조선인 전범문제를 연구해 온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 우츠미 아이코 선생은 신흥재벌 무라이 기치베가 이 농장조성당시 작성해 온 대량의 친필서한을 분석하여 이 농장의 형성과정에 대한 일본인 경영자의 의식을 직접 연구해 온 학자이며, 당일 학술회 발표에 참여했습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박경용 선생의 칼럼과 이윤옥 기자의 기사와 민족문제연구소 학술회를 참고할 때 본 의원은 소위 ‘감방에 김해사람 빼면 감옥이 빈다’ 란 누명은 반드시 벗겨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첨부해드린 자료 1. "무라이농장은 일제 식민지주 이익 위한 것" 첨부자료 2. ‘토지수탈자 무라이 기치베와 경남인의 저항’ 첨부자료 3. ‘김해지역의 소작쟁의’, 첨부자표4. ‘조선 농지령’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은 우리 농민들의 재산을 착취한 자본력으로 농민 노동력을 동원해 많은 수리 시설물을 구축했습니다. 경부선 철도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에 구축한 모든 시설물들은 일본을 위한 것이지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부디 우리나라 개화기 근대화의 긍정적 효과로 확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해시 홈페이지에 있는 1925년 9월 진영소작인회 사건은 경상도 전역으로 확산됐다고 합니다. 1928년 5월 오사카 상인 하자마(迫間房太郞)가 농장을 매수하여 소작료를 올리자, 천명의 소작인이 1931년까지 연중행사처럼 소작쟁의를 일으킵니다. 1931년 11월 소작인 200여명이 도보로 부산 하자마본점과 경남도청까지 몰려가 요구조건을 관철시켰습니다. 그 결과 1934년 총독부가 조선농지령을 공포했습니다.

본 의원은 김해농민운동사 관련하여 사료 조사 및 연구 용역 실시를 건의합니다.  WTO체제로 인한 농업개방 및 강대국의 다국적 기업에 의한 유전자조작식품 등 농업부문에 불어닥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항하고, 다양한 소규모 농업단체들간의 연대를 통해 경제적 측면에서의 평등과 사회정의. 식량안보 수호. 지속 가능한 농업 환경 마련 등을 추구하며 우루과이라운드와 한-칠레 무역협정에서 농업 분야의 피해를 호소하며 봉기했던 1990년대 김해농민운동 역사도 있습니다. 이러한 근. 현대 김해농민운동에 대한 가치를 밝혀 사료를 구축함으로써 후세에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당부 드리며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경청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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