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회의 가락인] 진경대사

작성일
2018-08-28 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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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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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의 후예로서 신라불교의 진흥에 크게 기여했던 사람이 진경대사(眞鏡大師)였습니다. 진경대사는 신라 말기에 새로운 불교운동으로 전개되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창원 봉림산문(鳳林山門)를 창건한 큰스님이었습니다. 1919년 3월에 일제가 창원 봉림사 터에서 서울 경복궁 내로 이전한 진경대사비에 상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진경대사는 신라 문성왕 17년(855) 12월 10일에 탄생하였는데, 이름은 심희(審希)였고, 속세의 성(姓)은 신 김씨(新 金氏), 임나왕족(任那王族)의 후예로 흥무대왕(興武大王)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김씨란 신라가 가락국을 통합하면서 새로 편입된 김해김씨를 경주김씨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던 명칭이며, 임나왕족의 후예란 가락국 왕족의 후예란 뜻이며, 흥무대왕은 김유신의 시호입니다. 진경대사는 9세에 원감대사(圓鑑大師)에게 사사하여 19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14년 간 명산을 돌면서 수도를 쌓아 존경받는 고승이 되었습니다. 888년에 진성여왕의 부름이 있었으나 나가지 않고 진례성제군사(進禮城諸軍事) 김율희(金律熙)의 초청으로 봉림사를 개창하였습니다. 918년에는 경명왕의 청으로 왕궁으로 들어가 법응대사(法膺大師)라는 호(號)를 받았습니다. 70세 되던 경명왕 7년(923) 4월 2일에 봉림사에서 입적하였는데 경질선사(景質禪師) 등 500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같은 해에 사리탑이 세워졌고, 이듬해에 비(碑)가 세워져 지금은 각각 보물 362호와 36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락인의 후예로서 신라불교의 진흥을 위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큰스님이 진경대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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