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릉의 제사] 수로왕릉의 제사

작성일
2018-08-28 18:01:26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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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년에 문무왕이 즉위하면서 수로왕릉의 정비를 명하고 아주 좋은 땅 30경을 왕위전(王位田)으로 부쳐 대대로 제사를 거르지 않게 하였는데 신라 말에 제사가 끊어지려 하였습니다. 신라 말에 중앙의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 잡간( 干, 3품) 충지(忠至)가 금관고성(金官高城)을 차지하고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자, 그를 따르던 아간(阿干, 6품) 영규(英規)라는 자가 충지의 세력을 업고 수로왕릉의 제사를 빼앗아 마음대로 하다가 단오 날에 사당의 중방이 부러져 내려 압사하였습니다. 이에 충지는 수로왕의 영정을 그려 밤낮으로 받들었지만 초상의 눈에서 힌 말이 넘는 피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친손 김규림(金圭林)으로 하여금 제사를 받들게 하였습니다. 김규림은 이후 88세가 되도록 제사를 지내다가 아들 간원(間元)에게 잇게 하여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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