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의 삼일운동] 장유면의 만세시위

작성일
2018-08-29 10:44:55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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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 출신 김종환(金鍾 )은 삼일운동 후 독립선언문을 옷깃에 숨겨 고향에 돌아와 지방유지 김승태(金升泰)와 모의하고, 이강석(李康奭) 김용주(金鎔鑄) 조용우(趙鏞宇) 조항래(趙恒來) 등 십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였습니다. 4월 11일 신문리 범동포 이학도(李學道)의 주막에서 지역별로 동원 책임을 분담하고, 갈대밭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문을 등사하여 각 대표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4월 12일 연락 받은 장유면민들이 사방에서 무계리 시장 터로 모여들고, 내덕리에서는 이강석이 새벽부터 모임을 외치고, 김승태는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 섰으며, 동민들은 북치고 나팔 불면서 무계리 시장으로 모여들었는데, 12시경에는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김승태와 김종환의 선도로 천지가 진동할 만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무계리 중심을 행진하고, 헌병파견소를 포위하였습니다. 헌병대가 총을 난사하자 군중들은 일단 흩어졌습니다. 다시 군중들이 모여들어 독립만세를 외치자, 헌병대는 총을 쏘았고, 총을 빼앗으려 맞서던 손명조(孫明祚) 김용이(金龍伊) 김선오(金善五)가 절명하였습니다. 가족과 시위대는 파견소로 몰려가 건물 등을 파괴하였으나, 김해분견대에서 나온 기마대와 충돌하여 김승태 김종환 등 10여 명이 검거되고 군중들은 날이 저물어 해산하였습니다. 김해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삼일운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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