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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당 강담운.

작성일
2018-10-05 13:35:06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
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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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당 강담운

지재당 강담운

여성한문학의 맥을 이었던 김해의 기생
지재당 강담운 只在堂 姜澹雲

조선시대의 기생 중에는 지배층인 사대부와 예술과 문화를 공유할 만큼 문화예술 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던 이들이 많다.
서화담·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는 황진이, 일본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 논개, 허균과 시를 나누었던 부안기생 매창 등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이름을 남긴 기생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김해에는 한 사람을 지극히 그리워했고, 김해의 산과 강과 하늘을 아꼈으며, 그 마음을 한시에 담아 여성한문학의 맥을 이었던 기생 '지재당 강담운'이 있었다.

평양에서 기녀의 딸로 태어나 여덟살 때 김해로 옮겨와 생활
차산 배전 향한 애틋한 사랑 담아 시집 '지재당고' 수록된 시 남겨

강담운이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이 세상을 떠났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사랑했던 차산 배전(1843~1899. 조선말에 활동한 개화 사상가이자 김해 출신 문인화가)의 기록과 강담운의 시를 통해, 두 사람이 만난 시기나 강담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차산 배전을 연구하다가 강담운의 시집 '지재당고'(1877년 간행)를 알게 된 이성혜(문학박사·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의교수) 교수는 강담운이 20살 전후에 차산을 만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교수는 강담운의 한시를 번역하여 시집을 엮었다. 그 시세계를 연구한 논문 '지재당 강당운의 시세계-그리움으로 머뭇거리는 서성임의 미학'('동양한문학연구'제18집·2003.10)도 발표했다.

그리움을 아는가
강담운의 시집 '지재당고'를 이성혜 교수가 번역하여 펴낸 '그대, 그리움을 아는가'(보고사, 2002).

시집 '그대, 그리움을 아는가'(보고사, 2002)에는 우리말로 번역한 강담운의 시, 시세계를 풀어 설명한 이 교수의 글, '지재당고'에 수록되었던 서문과 발문이 실려 있다.
이 교수는 '지재당고'를 처음 보았던 순간을 '차산 연구에 몰두해 있던 시간, 내 손에 작은 시집 하나가 쥐어졌다. 그 시집을 받아든 순간 내 눈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었다. 一心人 裵此山(일심인 배차산)'이라고 번역시집 책머리에 밝혔다.

강담운이 남긴 시 중에서 그녀의 삶을 짐작해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옛날을 생각하고 또 옛날 생각 /유영의 봄에 나고 자랐지 /여덟 살에 어머니를 따라 /배를 타고 남쪽 나루를 건넜네. /분성객관에 잘못 떨어져 /구란에 이 몸 맡겼네."('옛날을 추억함' 시작 부분)

'유영'은 평안도의 병영을 이르는 말이고, '분성'은 김해, '구란'은 기녀나 배우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강담운은 평양에서 기녀의 딸로 태어나 자라다가 여덟 살에 김해로 왔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기녀의 삶을 살았던 강담운은 글씨를 잘 썼고, 시를 잘 지었다.

시서화에 뛰어난 문인화가였던 차산 배전과 강담운은 어떤 사랑을 나누었을까.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었던 가도(賈島)의 시 중에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이 있다. '지재차산중'은 '오직 이 산속에 있다'는 뜻으로, 사물이 일정한 범위 밖으로 나가지 않음을 이른다. 이 구절에서 배전은 '차산'을 취하여 자신의 호로 삼았고, 강담운은 '지재'를 취해 호로 삼았다. 강담운은 스스로 오직 차산 배전 안에서 살아가고 존재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차산 역시 강담운의 시를 엮어 '지재당고'를 펴내면서 '一心人 裵此山 校'(배차산이 교정을 보았다는 뜻)라고 썼으니, 강담운을 아낀 차산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재당고'에는 차산을 그리워하는 지재당의 마음을 담은 시가 절반이 넘는다. 차산이 1870년대 서울로 떠난 후 떨어져 있는 동안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인 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시월 강남에 비 내리니 /북쪽엔 눈 내리리라. /북쪽에서 눈 만나시거든 /비속에서 그리워하는 저를 생각하소서. /떠날 때 주신 귤 하나 /손의 반지인 듯 아낍니다. /양주로 오시게 되면 /돌아오시는 날, 만 개를 드리오리라."('서울로 가는 사람과 이별하며' 전문)

따뜻한 남녘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천리 길 먼 곳에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심정, 귤 하나를 만 배의 사랑으로 키워가는 지재당의 마음이 애절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객이 되어 장안에 있을 그대를 생각하니 /예전의 범저처럼 여전히 가난하리. /가을하늘 은하수는 흰 베를 펼쳐놓은 듯 /버들 끝에 지는 달은 금동이를 걸어 놓은 듯. /소식 끊어진 지 오래인데 정은 어찌 이리도 지극한지"('가을 밤 장안에 붙임' 중에서)

멀리 있는 임을 염려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애틋하다. 이성혜 교수가 번역한 시집 '그대, 그리움을 아는가'는 한문시 원본을 함께 수록하고 있는데, 우리말과 대조하여 읽어보면 우아하고 담백한 한시의 품위도 느껴볼 수 있다.

초선대
초선대. 지재당은 이 곳에서 신어산을 바라본 심정을 '금릉잡시' 중 한 편으로 썼다.
박정훈 객원기자

홍문관 부제학 이재긍 "시정과 언어 투명하다" 극찬
이성혜 부산대 교수 "한국한문학 사상 큰 의의" 평가

차산은 서울에 있으면서 흥인군(이최응. 대원군 이하응의 형)의 아들이자 고종의 사촌인 이재긍(홍문관 부제학)에게 지재당의 시를 보여주었다. 이재긍은 시집 '지재당고' 출간을 도우며 '지재당소고서'를 직접 썼다. "시정과 언어가 투명하여 티끌이 하나도 없으며, 환하여 그림과 같았다. 금릉의 풀 하나, 꽃 하나, 산 하나, 물 하나가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밝고 투명함이 남전에 나는 옥이 햇볕처럼 따뜻하고, 여룡의 여의주가 밤을 밝히 듯하여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였다.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면서 후세에 전할 생각을 하였다."

이재긍이 눈여겨 본 지재당의 시는 '금릉잡시'였을 것이다. 지재당은 김해의 자연을 노래한 '금릉잡시'를 썼는데, '금릉'은 김해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이다. 이 시편을 읽어보면 옛 김해의 모습이 눈앞에 아스라이 펼쳐지는 듯하다.

"연자루 앞 버들개지 /버들개지 제비새끼 비스듬히 나네. /제비는 꽃을 쫓고, 꽃은 제비를 쫓아 /성 안의 여러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에서는 봄날의 풍경을 전해준다.

"구지봉 머리에 붉은 노을 비치고 /후릉의 송백엔 가을바람 이네. /상심한 한 조각 파사의 돌 /늘어진 풀 쓸쓸한 안개 참으로 적막하다."는 가을날 구지봉과 허왕후릉의 해질녘을 그림처럼 펼쳐준다.

"여뀌꽃 핀 섬 가을빛이 그림 속에 들어오고 /끊어진 노을 맑은 비단 그 경치 어떠한가. /초선대 옆에 말 세우고 /온 산 붉게 물든 신어산을 바라보네." 지재당은 신어산의 단풍에 넋을 빼앗긴 어느 가을날 이 시를 지었으리라.

이성혜 교수는 "지재당의 한시가 여성한문학사를 더 풍부하게 했고, 조선조 말까지 여성한문학의 맥을 이어주었으며, 한문학사에 있어 그리움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어 한국한문학사상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시를 통해 바라본 김해는 다정하고 아름다운 고을이었다. 속박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천천히, 오래오래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표현했던 그녀의 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오직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여인이었고, 김해의 산과 산그늘에 스며드는 노을까지도 눈에 담았던 시인이었던 지재당 강담운. 그녀는 김해에서 핀 아름다운 꽃이었다.

이성혜 교수가 이야기하는 지재당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차분하면서 환한 시어들"

시집 '지재당고'를 알았을 때 이 교수는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하는 기분이 이랬을까
할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지재당의 시들은 애잔하면서도 쓸쓸했습니다.
김해의 풍경을 읊은 시에서는 맑고 차분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뭔가 '환하다' 라는 느낌이었죠. 특히 그녀의 시는 서두름이 없이 머뭇거리고 망설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교수는 수년 전 차산과 지재당의 흔적을 찾으려고 김해를 누비고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며, 이번 기회에 지재당이 다시 조명받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지재당의 신분이 비록 기생이었지만, 배전이라는 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염려한 듯합니다.
또한 배전도 지재당의 인격과 문학을 인정하며 연인이자 같은 문학인으로 사랑한 듯합니다."
이 교수는 가볍지 않고, 기다려주며, 지켜볼 줄 아는 지재당의 사랑을 전해주었다.
이 교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표지석으로 세우면 지역 관광에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차산과 지재당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그들을 널리 알리는 일은 김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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