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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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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 유적2

  • 명칭 : 김해 봉황동 유적
  • 주소 : 가락로63번길 51 (봉황동) 길찾기 복사
  • 관리기관 : 사적지관리팀
  • 전화번호 : 055-330-7311
  • 이용료 : 무료
  • 이용시간 : 상시개방
  • 주차정보 : 주차장 - 113대, 주차요금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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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패총(조개무지). 초기 철기시대 유적으로, 높이 7m, 동서 길이 약 130m, 남북의 너비 약 30m의 낮은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가야시대 주거지와 고상가옥, 망루, 선박 등을 복원 설치해 가야시대의 생활상을 현장감 있게 살펴볼 수 있다. 구릉의 남쪽에는 회현동의 마을이 있고, 북동쪽 낭떠러지 밑에도 민가가 들어서 있어 패각층이 드러난 단면과 구릉 위에 흩어진 흰 조개껍데기를 볼 수 있다.
처음 알려진 것은 1907년이지만, 1920년에 있었던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비롯하여 그 뒤 몇 차례의 학술조사를 통하여 이 유적에 대한 문화적 성격과 연대의 개요가 밝혀져서, 한국 선사시대의 유적지 중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이다. 일련의 발굴과정을 통해 이른바 김해토기(金海土器)라고 명명(命名)된 토기의 조각들이 가장 많이 나왔고, 도끼와 손칼과 같은 철기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철기가 이미 일상생활의 도구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철기 이외에 골각제품(骨角製品)으로서도 골촉(骨)·골침(骨針) 등과 송곳 같은 찌르개류[尖頭類]도 함께 출토되었다.

1920년의 발굴 때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때의 돈인 화천(貨泉) 1 개가 나와 이 패총의 상한연대(上限年代)가 밝혀졌고, 또 함께 발견된 탄화미(炭化米)는 한국의 벼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뒤 34~35년의 발굴을 통하여 한 무리의 돌널무덤과 그 옆의 독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한 개의 옹관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청동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이 외에도 남방식 고인돌[南方式支石墓]의 뚜껑돌로 보이는 한 개의 큰 돌이 현재에도 있다.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는 2001. 2. 5일 회현리패총과 더불어 ""김해 봉황대 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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