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시대란] 가락국(駕洛國)의 이름

작성일
2018-08-28 17: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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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복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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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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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가야에 대한 이름은 실로 다양합니다. 가야인 자신의 기록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백제나 신라인에 의해 기록된 것이 후대의 역사서에 다르게 채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김해의 가야인 스스로가 내세웠던 나라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삼국유사』에 채록된 「가락국기(駕洛國記)」는 『삼국사기』보다 일찍 편찬되어 김해의 가야사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기록입니다. 「가락국기」는 가락국의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의식에서 편찬되었던 역사서였습니다. 「가락국기」가 김해의 가야를 가락국으로 칭했던 의미는 단편적 사실 속에서 여러 이름을 전하는 다른 역사서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수로왕(首露王)은 나라를 세우고 대가락(大駕洛), 가야국이라 하였습니다. 대가락은 가라(加羅)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자존의식을 잘 나타내는 뜻으로 김해의 가야인들이 주장하고 사용했던 이름입니다. 『삼국사기』는 김해의 가야를 가라(加羅), 가라인(加羅人)으로도 표기하였습니다. ‘나라의 말씀’이 ‘나랏말씀’이듯이, ‘가라의 나라’는 ‘가락국’이었습니다. 가락국 마지막 왕의 증손인 김유신(金庾信)의 비문에도 수로왕 이전의 김해가 가락구촌(駕洛九村)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금관(金官)이란 지명은 신라가 가락국을 통합하면서 생긴 이름이었습니다. 금관(金官)은 가락국의 철(金)을 관리(官)하겠다는 정복자 신라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지 금관(金冠)이 아닙니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명이 금관주(金官州)였습니다. 금관주에 있었던 가야라는 뜻으로 고려시대에 지어진 이름이 금관가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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