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의 김해] 남명선생의 강학과 산해정

작성일
2018-08-29 10: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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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복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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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성리학의 쌍벽이셨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무려 18년 동안 김해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성리학을 연구하셨습니다. 연산군7년(1501) 합천 삼가에서 출생하고, 20세에 생원과 진사의 초시에 1등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않고, 30세에 처가인 김해로 이사하여 산해정을 짓고 18년 간 연구와 교육에 전념합니다. 김해에서의 18년간은 사림의 기풍을 진작하는 힘이 되었고 조선 거유(巨儒)로 추앙받게 하였기 때문에 조정은 벼슬길로 불렀으나 한번도 하지 않습니다. 산해정(山海亭)은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굽어본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경륜과 도량이 바다와 같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여 쓴 것으로, 선조21년(1588)에 서원으로 착공했으나 왜란으로 중지된 것을 광해군원년(1609)에 완성하여 신산서원(新山書院)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고, 광복 후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당 영역이 없이 학문을 가르치는 공간만으로 이루어진 서원 형식입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입니다. 남명선생이 처음 성리학을 연구하신 곳이었고, 기묘·을사사화로 주저앉았던 선비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게 한 곳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교육적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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