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 김해지역의 소작쟁의

작성일
2018-08-29 10:47:09
담당부서 :
가야사복원과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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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9월 진영소작인회는 무라이농장(村井農場)의 소작인대회를 열고 일본인 소작인과의 차별철폐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1928년 5월 오사카 상인 하자마(迫間房太郞)가 농장을 매수하여 소작료를 올리자, 천명의 소작인이 1931년까지 연중행사처럼 소작쟁의를 일으킵니다. 1931년 11월 소작인 200여명이 도보로 부산 하자마본점과 경남도청까지 몰려가 요구조건을 관철시켰습니다. 1932년 1월에는 소작인 간부 11명에게 소작계약만료가 통고되자, 소작인 373명이 재계약을 요구하였습니다. 다시 대표 20명이 소작권을 박탈당하자, 군청에 몰려가 항의했으나 듣지 않아, 250여명이 농장에서 시위하고, 200여명은 비료대금의 지주와의 반씩 부담 등을 요구하기 위해 밤에 배를 타고 부산까지 진출하였습니다. 2월 들어 김해·진영·마산의 경찰이 비상경계를 펴고, 농장 측은 소작인의 위협과 회유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결과적으로 쟁의간부 13명이 구속되고, 김해농민조합의 정기총회가 금지되었으며, 4월에는 배종철(裴鍾哲) 등 농민조합의 간부들이 체포되기 시작합니다. 1931년 하자마농장(迫間農場)의 소작쟁의는 남한에서 가장 치열했던 운동으로 1934년 3월 총독부가 소작계약기간 최저 3년, 도지사 임명의 소작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조선농지령을 공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7년 12월에도 도요타농장(豊田農場)에서 60여명의 소작인이 가락면사무소에 소작료 부당 인상의 시정을 요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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