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위가 이어지며 낮엔 땀이 줄줄 흐르고, 밤엔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한여름 어느 날, 시골에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오랜만에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구십이 넘은 연세에도 혼자 시골살이를 고집하시는 어머님은 햇볕에 그을린 얼굴, 하얗게 센 머리카락, 굽은 허리로 나타나셨다. 평소 안부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도시에서 사는 자식들이 아무리 같이 살자고 해도 “시골이 공기도 좋고 사람들도 정겹다”며 한사코 혼자 계시겠다는 어머님.
이번에도 양손 가득 양파, 마늘, 감자, 상추, 고추 등 직접 기르신 농작물을 들고 오셨다. 시장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유기농이라며 땀 흘려 챙겨오신 걸 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시원한 걸 드리고 싶어 급히 마트에서 수박 한 통을 사 왔다. 그냥 대충 고른 거라 혹시 덜 익었을까 걱정이 됐다. 넓은 쟁반에 담아 드리자, 어머님은 수박을 보시곤 “따 보지 않아도 잘 익었겠구나” 하셨다. 다행히 속은 새빨갛고 당도도 높았다. 꼭지 둘레가 살짝 꺼진 수박이 맛있다는 요령도 함께 알려주셨다. 덕분에 수박 고를 때마다 칼로 도려내 보는 수고는 덜 수 있을 것 같다.
다 먹고 남은 껍질과 씨를 버리려 하자, 어머님은 “그건 저녁반찬으로 써야지” 하시며 요리법을 알려주셨다. 겉껍질을 벗긴 뒤 속껍질을 채 썰어 소금과 기름으로 볶으면 박나물 같은 맛이 나고, 된장찌개에 넣으면 은은한 수박향이 퍼져 맛이 아주 좋다고 하셨다. 말씀대로 해보니 정말 별미였다. 수박 하나로 과일, 반찬, 국거리까지 해결한 셈이다.
수박 고르는 법, 껍질 활용법 모두 어머님의 삶에서 우러나온 실용적인 지혜였다. ‘나이 드신 분 말씀은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처럼, 시어머니의 말은 하나같이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짜 배움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시어머니의 정성과 지혜 덕분에 마음만은 시원하고 흐뭇했던 하루. 언젠가 나도 이 이야기를 내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