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전 시골 초등학교에 다닐 때, 도시락은 보리밥에 김치나 나물 같은 소박한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보릿고개로 하루 세 끼를 제대로 먹기 어려웠고, 점심은 고구마나 감자로 대신하곤 했었다. 쌀은 귀해서 도시락의 밥도 보리가 70% 이상이었으며, 반찬은 고추, 쌈장, 단무지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놀다 물로 허기를 달래는 일이 많았었다. 미국 원조로 받은 강냉이죽이나 떡을 나눠 먹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는 그 떡이 맛있어 보여 도시락을 친구들과 바꿔 먹기도 했었다. 쌈장 하나만 반찬으로 가져와 부끄러워 도시락 뚜껑도 제대로 열지 못하던 친구들도 있었고, 대부분 여학생들의 키는 140cm를 넘기기 어려웠을 정도로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 요즘 아이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 시절에도 부모님은 자식만큼은 남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애쓰셨다. 자신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도 감자볶음, 멸치볶음, 어묵, 계란프라이 같은 반찬을 정성껏 도시락에 싸 주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성과 사랑이 눈물겹도록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렸던 어린 시절이 참 부끄러웠었다.
이제 내가 70대 중반이 되어 손주들이 반찬 투정을 할 때면, 그 시절 도시락 이야기를 들려주며 교훈 삼고는 한다. 요즘은 학교에서 균형 잡힌 급식을 제공해 옛 도시락은 구경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만, 자식의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의 정성과 마음만큼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독 그리운 요즘이다.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