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나이가 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이 생기기 마련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똑같을 것이다. 여우도 죽을 때면 머리를 고향으로 향해 죽는다 하니,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손짓하는 고향, 잎이 모두 떨어진 미루나무 가지 위에서 까치가 반겨주는 고향이 유난히도 그립다.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가 미소 짓는 들녘에서 곰실곰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즐기곤 했다. 밭도랑을 누비며 캐낸 냉이와 싱싱한 쑥은 봄 식탁을 신선하게 채워주었다. 그맘때쯤이면 어머니는 겨우내 덮고 자던 이불의 홑청을 뜯어 깨끗이 빨아 널었다. 어느 정도 물기가 남은 채로 언니와 다듬이질하던 기억이 새롭다. 멀리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는 ‘집에 어머니가 계시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 시절의 아릿한 추억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리게 한다.
여름옷은 홑옷이라 통째로 빨 수 있었지만, 겨울 겹옷이나 솜을 넣은 두툼한 옷은 모두 뜯어 다시 지어야 했다. 시냇가에는 늘 빨랫방망이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빨래를 끝낸 천은 언니와 마주 잡고 당겨 구김살을 폈다. 다시 접어 포개어 약간 물기가 있는 상태로 보자기에 싸서 방바닥에 놓고 한참을 밟았다. 그리고 그 천은 빤빤한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다시 한번 힘껏 두들겨 맞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뒤에는 엄마와 언니가 마주 앉아 박달나무 방망이를 한 쌍씩 쥐고 다듬이질을 했다.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교대로 박자를 맞추어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천은 반짝거리게 된다. 잘 울리는 박달나무 방망이로 두드려 나는 다듬이 소리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르게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그때 언니는 어느덧 팔십 대가 되어 손주를 네 명이나 둔 할머니가 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그렇게 흔하던 다듬이 소리도 이제는 시골에서조차 들을 수 없게 됐다. 대부분 세탁기로 처리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맑은 동심마저도 복잡다단한 현대의 바쁜 생활 속에 묻혀버린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