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1001 호 25페이지기사 입력 2022년 09월 21일 (Wed) 07:57

제248회 김해시의회 제1차 정례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강성갑 선생의 기념관 건립이 필요합니다.-정준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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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준호 의원

존경하는 56만 김해시민 여러분,

류명열 의장님과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그리고 홍태용 시장님과 관계 공무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진영, 한림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 정준호입니다.



  본 의원은 오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교육의 선각자이신 강성갑 선생 기념관 건립의 당위성과 그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77년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던 그 시대에는 진영을 중심으로 한 인근 소재지에 중학교가 없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돈 많은 자녀는 마산이나 부산으로 중학교를 다녔으나 대개 가정의 자녀들은 배움의 길이 막혀 노동일을 하거나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강성갑 선생은 진영에 오셔서 1946년 8월15일 대흥초등학교 교실을 빌려서 “진영 복음중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진영에 최초로 중학교가 생기는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진영 대창초등학교는 한국인의 자녀들이 다니는 보통학교였고 대흥초등학교는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였기 때문에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남은 빈 교실에서 공민학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공민학교를 설립하자 중학교 공부를 못한 학생들이 몰려와서 그해 10월부터는 옛 진영여자중학교 자리에 일본인 주택과 창고를 개조하여 2부제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부산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한 강성갑 선생은 진례와 지금의 부산시 녹산에도 학교를 설립하여 진례중학교와 녹산중학교의 모태가 되게 하는 등 가난하여 배우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온몸과 정열을 다 바쳤습니다.



강성갑 선생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진영을 비롯하여 인근 대산, 한림, 진례, 장유 등지의 재래시장에서 밧데리 확성기를 지게에 짊어지고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라고 외치고 다녔으며 1인 1 기술교육을 익히게 하여 배우면서 기술을 익혀 학생 스스로 학비를 버는 자립정신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해방된 새나라의 주역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서울의 대학생들이 강성갑 선생의 강의를 청해 듣고는 감격하여 방학에 봉사단체를 조직하여 한얼중학교에 와서 낮에는 학교 시설 건축을 위한 흙벽돌을 만들고 밤에는 학생들과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 봉사단으로 진영에 왔던 학생들은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진영에 와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알찬 교육이라고 소감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동길 박사, 전 문교부 장관을 지낸 이규호 박사 등이 봉사활동에 참가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강성갑 선생은 “교육 활동이란 한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사명감에서 출발한다.”면서 〈일하기 싫은자는 먹지도 말게하라〉는 근로정신을 고취 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는 박애주의자로 인류는 모두 평등하고 인종, 종교, 계급을 초월하여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흙을 사랑하라”는 삼애 정신과 희생, 근로, 봉사 정신을 교육의 방침으로 정했습니다. 강성갑 선생이 설립한 한얼중학교의 “한얼 이란, 큰 뜻 높은 이상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로 설립 당시 우리말로 된 학교는 한얼중학교가 유일했습니다.



진영읍 기관장 회의에서 진영읍 도로에 심을 가로수 나무 품목을 선정할 때 감나무를 심자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감이 익기도 전에 다 따먹을 것 아니냐” 라고 했을 때 강성갑선생은 “먹어도 배고픈 내 민족이 먹지 않느냐.”고 항변을 하였다고 합니다. 강성갑 선생은 철저한 민족주의 자이며 선각자로서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구국구민에 두고 이를 위한 첩경으로 과학교육과 기술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려고 애쓰신 분입니다.



강성갑 선생은 이 땅에 중학교를 세우고 고등학교를 세우고 대학까지 설립하기 위해 본산리에 부지까지 마련해 놓았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공산주의자란 누명을 쓴 채 그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동족의 총을 맞고 낙동강 수산교에서 38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강성갑 선생이 돌아가시지 아니하고 그 꿈을 이루었다면 김해는 우리나라 제일가는 교육도시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거룩한 이 겨레의 존경 받는 참 교육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성갑 선생이 끝내 이루지 못했던 그의 교육적 가치를 이 땅에 되살리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가치를 실현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강성갑 선생의 소중한 역사적 자료를 보존하고 전시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요 사명입니다. 그가 최초로 학교를 세웠던 진영에 기념관을 건립하여 그의 교육적 사상, 철학, 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각종 문헌들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우리 교육의 좌표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소중한 그의 문헌과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한곳에 전시하여 영구 보존케 하는 것이 교육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한정된 재원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 행정의 주 역할 중 하나이지만, 훌륭한 지역 인물을 재조명하고 그 얼을 기리는 것에 예산의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고민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의 선각자로서 희생하신 강성갑 선생의 얼을 기리고 이곳 김해가 우리나라 미래 교육의 혁신이 시작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념관 건립 추진에 김해시 행정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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