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유적지> 대성동고분군 제1~4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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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명 대성동고분군 제1~4차
소재지 대성동 434번지 구릉을 중심으로 한 평지
지정여부 사적 제341호(지정일자-1991년 1월 9일)
참고문헌 김해대성동고분군Ⅰ(경성대학교박물관 연구총서 제4집) 발행일자-2000년 2월 28일 김해대성동고분군Ⅱ(경성대학교박물관 연구총서 제7집) 발행일자-2000년 6월 20일 김해구지로분묘군(경성대학교박물관 연구총서 제3집) 발행일자-2000년 1월 30일
주요유물 토기-주머니호·조합우각형파수부호·단경호·노형토기·고배·유개대부 직구호·유개장경호·발형기대·통형기대·시루·광구소호·연질옹·압형(오리모양)토기 철기-철촉·철부·판상철부·주조괭이·철모·환두대도·철정·살포·철도자·삼지창·곡도·낫·철검·보습·꺾쇠·집게·재갈·등자·행엽·안교·갑옷·투구·목가리개 청동기-동복·호형대구·방격규구사신경·통형동기·파형동기 석제품-석촉·방추차형석제품·통형석제품·이형석제품 장신구-벽옥귀걸이·유리귀걸이·수정목걸이·팔지 뼈-골촉·돼지이빨·인골
조사기관 경성대학교박물관
조사일지 제1차-1990년 6월 12일 ∼ 8월 1일 제2차-1990년 9월 3일 ∼ 1991년 4월 14일 제3차-1991년 10월 8일 ∼ 1992년 3월 8일 제4차-1993년 8월 4일 ∼ 9월 23일
조사유구 목관묘 34기, 목곽묘 46기, 수혈식석곽묘 28기, 옹관묘 14기, 횡혈식석실묘 1기, 지석묘 1기, 도랑시설

기원 후 2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분묘가 축조되었으며, 분묘 축조의 중심시기는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초까지입니다. 이 시기에 무덤의 규모가 가장 크고, 토기·철기·장신구 등의 부장품이 많이 부장됩니다. 4세기에 들어오면 앞서 만들었던 분묘 위에 다시 새로운 분묘가 들어서면서 선행의 분묘를 파괴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동복·청동거울·석제품 등의 외래물품이 집중되어 있어 중국·북방·왜 등과 활발한 교류관계가 이루어졌음을 말합니다.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의 최고 지배자집단의 공동묘역이며, 금관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사회구조를 해명하는데 으뜸가는 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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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고분군 제1~4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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