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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나타난 허왕후(수로왕비 설화)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까지 어디하나 흠잡을 때 없이 아름다운 우리 국토 새하얀 뭉치구름하나 낮은 산자락 하나에도 굽이굽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그 수많은 이야기들로 하여 우리 산아는 더욱 아름답다.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다. 그러다 홀로 잦아들기도 하고 아니면 글로 남아 끊임없이 바뀌고 되풀이되면서 수천 년의 시간 속을 함께 흘러왔다.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채 전해져오는 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으려함 때문인지 일연의 삼국유사가 먼저 떠오른다. 흥미로운 건국신화, 평범한 민초들의 애환과 소망,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둘 꼬리를 물고 살아 오르기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바다 저 넘어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행여 조금이라도 바다 넘어가 보일까, 안간힘을 쓰며 돋움발을 세워봐도 바다 저 넘어는 마냥 그대로 끝이 없어 보인다. 바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 지 알 수 없었던 시절 바다에선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기록으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래서 더 신비로운 왕국 가야국 그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후는 저 바다 너머로부터 배를 타고 나타난 소녀였었다. 어린 나이로 어쩌면 밤하늘의 별을 벗 삼아 망망대해를 해쳐왔을지 모르는 소녀 이제 그 신비로운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 삼국유사의 2권 마지막 가락국기에는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시조 김수로왕이 왕위에 오르고 난 후 가야국은 빠르게 나라의 기반을 닦아나가고 있었습니다. 무신년 7월 27일 조회를 마치고 나서였습니다. 부락의 촌장인 아홉 간들은 왕의 배필을 정하는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왕후를 정하는 것도 ‘하늘에서 명령이 내릴 것이다’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아홉 간 중에 한 사람인 유천간에게 좋은 말을 가지고 남쪽 망산도에 가서 기다려보라 이렇게 명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서남쪽 바다에서 배가 한척 나타나 북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배는 붉은 비단 돗을 달고 붉은 비단 깃발을 펼친 배였습니다. 망산도에서 횟불을 들자 배는 섬으로 다가왔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보던 신기관 일행은 대궐로 달려와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왕은 기뻐하면서 화려하게 꾸민 배로 이들을 맞아 곧 대궐로 모셔 들이라 이렇게 명했습니다. 전갈을 받은 망산도의 유천간은 배에 탄 일행을 공손히 맞아 대궐로 모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공주로 보이는 소녀가 나서서 처음 본 사람들을 따라갈 수 는 없다 이렇게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수로왕은 직접 나가 대궐 서남쪽 산기슭에 장막을 치고서 배를 타고 온 일행을 기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