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개요

대성동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龜旨峯과 鳳凰洞遺蹟사이의 표고22.6m의 '왜(애)' 꼬지라 불리는 구릉과 구릉의 주변일대에 위치한다.

'왜(애)'꼬지구릉은 길이 약280m, 너비 약50m에 이르며, 북쪽에서 남동쪽로 완만하게 뻗은 독립구릉이다.
본 유적의 동쪽에는 金首露王릉이 인접하여 있으며, 서쪽에는 해반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대성동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90년부터 2001년 까지 모두 4차례의 발굴이 실시되었다. 이후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2009년부터 2020년 까지 6차례의 대성동고분군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총 10차례의 걸친 발굴조사에서 전기가야의 중심 고분군으로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 사회, 구조를 해명하는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경성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제1차 발굴조사

1990년 6월 12일부터 8월1일까지 실시되었다.
구릉의 남쪽 최정상부를 조사하였다. 1호와 2호로 명명한 2기의 대형목곽묘가 조사되었고, 그 속에서 통형동기, 다량의 철기류와 토기류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금관가야 지배자들의 부장품들이 처음으로 출토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정비전 유적의 모습

제2차 발굴조사

1990년 9월 3일부터 1991년 4월 14일까지 실시되었다.
제2차 조사는 구릉의 능선부의 전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되었는데, 구릉 정상부의 1호 목곽묘 동쪽 일부와 구릉의 중앙부, 구릉의 선단부 등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왜계유물인 파형동기가 부장된 13호, 북방계 유물인 청동솥(동복)이 조사된 29호분 등 총3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특히 앞 시기의 무덤을 후대의 무덤이 파괴하면서 만든 무덤간 중복현상이 확인되었다.


제3차 발굴조사

1991년 10월 8일부터 1992년 3월 8일까지 실시되었다. 조사는 구릉주변의 평지가운데 4개의 지역을 선별하여 조사하였다. 이는 유적의 정확한 범위확인과 능선부와 비교되는 주변지역의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유적의 전모를 밝혀내고자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목관묘보다 이른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溝가 새로이 확인되었고, 구릉의 주변에는 중·소형의 목곽묘와 목관묘, 수혈식석곽묘, 횡혈식석실묘 등이 다량으로 분포하였다.


제4차 발굴조사(박물관부지)

1993년 8월 4일부터 9월 23일까지 조사되었다. 대성동에서 내외동으로 가는 구지로 도로확장공사 중 무덤이 확인되어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곳은 대성동고분군의 북쪽의 저평한 구릉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목관묘와 목곽묘를 비롯한 57기의 무덤이 좁은 면적에 밀집, 중복되어 만들어졌다.


대성동고분박물관 학술발굴조사(제5차~10차 발굴조사)

제5차 발굴조사

2009년 10월 12일부터 12월 3일까지 학술발굴조사로 진행하였다. 5차 발굴조사에서는 목곽묘 68호~72호까지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68호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안장과 은제환이 발굴되었다.


제6차 발굴조사

2011년 7월 27일부터 10월 14일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73호~84호까지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석개목관묘, 목곽묘, 대형 수혈식석곽묘가 발굴되었다. 6차 발굴조사에서는 5세기 후반 수혈식 석곽묘와 청동기시대 석개목관묘가 대성동고분군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파괴가 심하긴 하지만 공백으로 있던 4세기초 목관묘도 확인되었다.


제7차 발굴조사

2012년 6월 4일부터 9월 26일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목곽묘 85호분~91호분까지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목곽묘와 석곽묘가 확인되었으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확인되어 국내외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제8차 발굴조사

2013년 6월 24일부터 9월 13일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70호 주곽과 95호를 발굴하였다. 8차 발굴조사에서는 점토로 밀봉한 초대형 목곽묘인 70호 주곽이 발굴되었다.


제9차 발굴조사

2014년 6월 24일부터 10월 7일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지석묘 1기, 목곽묘 93, 94호, 수혈식 석곽묘 1기가 조사되었다. 9차 발굴조사에서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5세기 중엽의 대형 목곽묘와 청동기시대 대형 지석묘가 처음 발굴되었다.


제10차 발굴조사

2019년 12월 9일부터 2020년 8월 28일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96호~149호까지 발굴조사 하였다. 옹관묘~목곽묘까지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대성동고분 발굴 옹관묘 중 이음식 구조는 첫 사례이며, 108호의 경우 가야 목곽묘 중 가장 온전한 상태로 확인되어 목곽의 구조와 유물의 부장 양상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성동고분군 발굴조사의 의의

대성동고분군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총10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무덤은 지석묘, 옹관묘,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수혈식석곽묘 등 여러 종류가 확인되었다. 목관묘는 주로 구릉 주변의 낮은곳과 평지에 조성되었으며, 목곽묘, 수혈식 석곽묘와 같은 대형무덤은 입지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 입지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애구지의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묘역과 피지배층의 묘역이 별도로 조성되었음이 밝혀져 금관가야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대성동고분 발굴조사

대성동고분 발굴조사 : 구분, 발굴기간, 발굴성과 및 주요 출토유물, 발굴기관
구분 발굴기간 발굴성과 및 주요 출토유물 발굴기관
1차 '90.06.12~'90.08.01 금관가야 왕들의 무덤 2기 최초 확인 경성대학교 박물관
2차 '90.09.03~'91.04.14 왕묘 추가 발견, 동복과 통형동기, 파형동기출토
3차 '91.10.18~'92.03.08 3세기초 왕묘 1기와 하위계층의 무덤군 확인
4차 '01.04.30~'01.09.23 57호에서 순장자 3인 및 다수의 목관묘 확인
5차 '09.10.12~'09.12.03 국내 출토품 중 가장 빠른 말안장 확인 대성동고분 박물관
6차 '11.07.29~'11.10.14 금관가야 쇠퇴기의 왕급무덤 1기 확인
7차 '12.06.04~'12.09.26 신라·가야유적 중 가장 빠른 시기의 금동제말갖춤·허리띠와 서역계 유리 확인
8차 '13.06.24~'13.09.13 4세기 대형목곽묘 및 금동제품 추가 발굴
9차 '14.06.23~'14.09.19 청동기시대 지석묘 대성동고분군 내 최초 발굴
10차 '19.12.09~’20.8.28 대성동고분군에서 도굴 되지 않은 108호 목곽묘 최초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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