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粉靑沙器)는 회색 또는 회흑색 흙 위에 백토(白土)를 분장한 뒤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입니다.
일제강점기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又玄 高裕燮. 1905~1944)이 청자 혹은 백자와 형태, 장식, 유약의 색깔이 비슷하지만 다른 특징을 갖춘 자기를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부르게 된 것이 시작입니다. 이후 여러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분장회청사기를 줄여서 ‘분청사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 청자의 뒤를 이어 시작하여 16세기 초반까지 약 150년간 제작하였고, 우리나라 도자기 중에서 가장 순박하고 민예적인 성격을 띠는 도자기가 되었습니다.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16세기 초반까지 약 150년간 제작되면서 크게 4시기로 구분하여 그 변천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상감청자 문양이 해체 변모된 시기입니다.
강진청자 자기소 해체 이후 전국적으로 분청사기 가마터가 확산됩니다.
인화분장기법을 활용한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시기입니다.
태종 17년(1417) 이후, 관아명(官衙銘)을 넣기 시작하여 분청사기에 관사명(官司銘) 또는 지방명(地方銘)이 새겨진 유물이 확인됩니다.
분청사기의 분장기법(7가지)이 모두 사용된 시기입니다.
특히, 박지·조화 기법의 사용에서 분청사기만의 특징이 드러나며, 인화분장기법의 절정기에 해당합니다.
발전기의 여운 속에서 지방색이 뚜렷해지기 시작합니다.
귀얄·덤벙 기법의 사용이 증가하며,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