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석전놀이

김해석전놀이
조상들의 얼이 담겨져 있고 기계와 용맹이 돋보이는 우리고장의 전통 민속놀이를 계승 발전시키고 타 지방에서 볼 수 없는 이 놀이를 통하여 전통문화의 멋을 일깨우며 시민들의 단합과 용맹성을 기르고 나아가 시민들로 하여금 더욱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유래

모든 민속놀이가 그러하듯 우리고장의 석전놀이 역시 최초의 근원은 알 수가 없지만 원시시대 부족들이 적으로부터 자신들의 방어목적으로 돌을 무기로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석전놀이가 문헌상으로 나타난 것은 고구려시대 전투에서 돌팔매질을 이용했음과 신라에서는 하나의 조직된 군사집단으로 “석투당(石投螳)”이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어 전투에 이용하였다고 한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와서는 석전사(石戰士)의 활약상이 크게 돋보인다. 조선 중종 5년(中宗 5年)에 삼포(三浦)(부산포, 염포, 제포)에 거주하던 왜인(倭人)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김해(金海)의 석전사(石戰士)들이 전라도까지 원정하여 왜구 토벌에 결정적인 활약을 하였음이 동국여지승람에 명시되어 전한다.

이렇듯 무기가 근대화 되지 못했던 시대에 전투수단으로 이용 되었던 돌팔매질이 하나의 놀이로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조선시대로 보인다.

제 35회 가야문화축제 개막식 석전놀이 시연 제 35회 가야문화축제 개막식 석전놀이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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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보면 김해지방에서는 매년 음력 4월 초파일 경부터 마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성(城)의 남쪽지역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좌, 우부(左, 右部)로 나누어 편을 가르고 깃발을 세우고 북을 치며 기상을 돋우고 돌을 던져 상대편을 공격하는데 마치 돌비(石雨)가 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사상자가 생겨도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싸웠다고 하며 음력 5월 단옷 날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석전놀이는 김해의 전통 민속놀이로 이어져 왔으나 경술국치 후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혼 말살정책으로 금지 시켰다.

※ 참고문헌 : 고구려전, 고려사, 중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경상남도지, 김해읍지

의의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고 기개와 용맹이 돋보이는 우리고장의 전통 민속놀이를 계승 발전시키고 타 지방에서 볼 수 없는 이 놀이를 통하여 전통문화의 멋을 일깨우며 시민들의 단합과 용맹성을 기르고 나아가 시민들로 하여금 더욱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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