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임나일본부의 정체 (2000.12.16)

작성일
2018-08-28 16: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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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여년의 침묵을 깨고 비석 하나가 새롭게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광개토대왕비였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문과 일본서기를 근거로 4세기부터 6세기까지 200년간 고대 일본이 고대 한국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한일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시작이었다. 광개토대왕비 재발견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일역사 최대 쟁점 임나일본부! 임나일본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최근 일본에서 일본 역사를 뒤흔드는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구석기 유물 발굴조작사건입니다. 일본은 지난92년 70만 년 전에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11월 일본 언론에 의해 이것이 한 일본역사연구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고대사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은 땔래야 땔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오랫동안 한일관계에 걸림돌이 되어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광개토대왕 비문입니다. 이 광개토대왕비는 414년 장수왕, 자신의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3층 아파트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이 비에는 1800여자가 쓰여져 있는데 현존하는 우리 역사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삼국사기보다 700여년이나 앞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이것이 고대 일본이 고대 한국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라고 주장을 해왔습니다. 이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부터 6세기 약 200년간 고대 일본이 고대 한국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으로 임나 즉, 이 가야지역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같은 지배기관인 일본 부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 광대토대왕비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왜이신묘년래 도해파백작 신라이위신민 자, 일본학자들은 이것이 광개토대왕 즉위 1년인 391년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고 그들을 모두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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