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유적 발굴자료
발굴명, 소재지, 지정여부, 참고문헌, 주요유물, 조사기관, 조사일지, 조사유구
발굴명 |
화정 1지구유적 |
소재지 |
삼계동 화정부락 |
지정여부 |
미지정(완전 소멸되고, 일부분 이전 복원) |
참고문헌 |
미보고 |
주요유물 |
토기-무문토기옹·고배·파수부옹·병형토기·대부장경호·단경호·옹·뚜껑·방추차
철기-낫·철부·철촉·철도자·대도
장신구-비취곡옥·벽옥제관옥·토제이당·금동제귀걸이·띠고리帶金具) |
조사기관 |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조사일지 |
1997년 12월 5일 ∼ 1998년 7월 27일 |
조사유구 |
집석유구 2기, 숯가마 3기, 옹관묘 14기, 수혈식석곽묘 47기, 횡구식 석실묘 21기, 횡혈식석실묘 47기, 토광묘 7기 |
화정유적은 김해시의 중앙을 관통하여 조만포로 흘러들어가는 해반천의 동쪽에 위치한 해발 35m의 저구릉상에 위치합니다. 화정유적은 시대가 다른 분묘와 숯가마 등이 있는 복수유적입니다. 삼한시대의 옹관묘는 김해지역에서는 집단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며, 이 시기의 일반적 묘제인 목관묘와의 비교연구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 지금까지 연대가 다소 불투명했던 숯가마와 횡혈식석실묘의 중복관계를 통해 볼 때, 적어도 7세기 이전에 제작 사용되었음이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100여기 이상의 고분이 군집한 대규모 고분군으로 수혈식석곽·횡혈식석실·횡구식석실·옹관·토광 등 다양한 묘제가 있어 금관가야 멸망 이후의 김해지역의 문화내용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특히 532년 금관가야의 멸망 이후 시기, 그리고 통일전쟁 직전의 김해지역 집단의 위상문제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명함에 있어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홍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