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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웅비(雄飛)의 진영(進永)

  • 우리고장 진영은 아득한 옛날부터 조상대대 축복의 삶터로 개척해 왔다. 수많은 피와 땀으로 가꾸어 온 역사의 터전에서 거룩한 조상의 숨결을 지키고 이어왔다.

연혁

  • 1914년 3월 1일 하계면 6개리(하계, 여래, 진영, 우동, 방동, 좌곤)와 중북면 6개리(신용, 내룡, 설창, 죽곡, 의전, 본산) 및 상북면 가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하계면으로 개칭하고 설창리에 면사무소를 두었다.
  • 1905년 5월 13일에 경전선(마산선)이 개통되고 진영역이 생김으로 마산, 김해, 삼랑진, 부산을 연결하는 교통 및 물류 수송의 중심지로 발전을 가속화 하였으며, 1928년 4월 1일 진영면으로 개칭하고 면사무소도 진영리로 이전하였고,
  • 1942년 10월 1일 읍으로 승격되어 김해읍과 더불어 김해의 동.서 양대축을 형성하여 김해의 발전을 이끌어 왔으며 1980년 7월 5일 읍사무소를 현 청사로 이전하였음
  • 진영이라고 칭하게 됨은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군사들의 진영의 형국이며 금병산은 상제봉조형으로 보고 여래리 동쪽을 장군대좌형의 명당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마을의 특징

  • 전국적인 명성의 특산물인 단감의 원산지
  • 마산. 창원등 대도시 근교지역으로서 개발수요가 급증
  • 산업입지,정주공간등 성장잠재력이 풍부한 지역
  • 교통의 편리함과 유통의 활성화로 먹거리(갈비)등 소비 문화의 중심형태를 유지
1969년 진영읍사무소 1969년 진영읍사무소
1971년 진영읍사무소 옛 모습 1971년 진영읍사무소 옛 모습
진영읍내 진영읍내

지명유래

진영

진영(進永)이라함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依)하여 군사(軍士)들의 진영(陳營)의 형국(形局)이며, 금병산(金屛山)은 상제봉소형(上帝奉소形)으로 보고, 여래리(余來理)의 동(東)쪽을 장군대좌형(將軍大座形)의 명당(明堂)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진영리(進永里)

진영리는 진영읍의 주산(主山)인 금병산(金屛山:錦屛山)아래 풍수지리설의 진영형국(陳營形局)으로 된 마을로 옛 하계면의 진영마을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하계면과 중북면이 병합하여 하계면(夏界面)이 되면서 부곡(夫谷), 신동(新洞), 밀포(密浦), 대진교(大進橋), 장등(長嶝), 철하(鐵下), 동구(東區), 서구(西區), 중구(中區)를 합해서 진영리(進永里)를 만들었다.

우동리(牛洞里)

우동리는 서천(西川)마을과 우동(牛洞)마을로 이루어졌다. 우동리(牛洞里)는 소가 누운 형국의 와우산(臥牛山)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옛부터 소골(솟골), 소동이라 부르다가 우동(牛洞)이 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하계면(下界面)과 중북면(中北面)이 병합하여 하계면이 되면서 서천(西川)을 병합하여 하계면 우동리(牛洞里)가 되었으며, 하계면에서 진영읍을 거쳐 진영읍이 된 오늘날까지 우동리(牛洞里)는 서천(西川)마을과 우동(牛洞)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하계리(荷溪里)

하계(荷溪)란 지명이 언제, 왜 생겼는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연꽃과 맑은 계곡이 무관하지 않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의 모양이 계곡에 피어난 연꽃이란 뜻을 담았다. 옛 하계면의 면사무소가 이곳에 있었는데, 1914년 3월 1일 하계면(荷溪面)과 중북면(中北面)이 병합하여 하계면이 되면서 면사무소는 설창으로 옮겨졌으며, 이때 하계리는 오척(烏尺)마을과 하계(荷溪)마을로 구성되었다.

사산리(舍山里)

진영읍 남서쪽에 있으며, 1914년 3월 1일 좌곤리(佐昆里) 일부를 병합하여 사산(舍山) 즉 독뫼를 중심으로 사산리 사산마을이 되었다. 부마고속도로 진영휴게소와 진영인터체인지 사이의 북쪽의 들 가운데에 집처럼 생긴 산의 모양이라 사산(舍山: 집사,뫼산)이라 부른다.

본산리(本山里)

본산리는 옛부터 명산(名山), 영산(靈山)으로 불리어 온 자암산(子庵山: 현재 烽火山) 아래에 형성되었음으로 인하여, 본산(本山)이라고 하였다. 1914년 옛 김해부(金海府) 상북면(上北面)의 가동리(佳洞里) 일부와 하계면 여래리 일부를 병합하여 본산리가 되었으며, 주호(注湖), 용성(龍城), 본산(本山), 금봉(金鳳), 봉하(峰下) 등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설창리(雪倉里)

설창리(雪倉里)에는 진영읍이 되기 전, 최초의 면(面) 중 하나였던 중북면의 면소(面所)와 세곡(稅穀)창고인 설창(雪倉)이 있었으며, 닷새마다 열리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1914년 3월 1일 중북면과 하계면, 상북면의 가동리 일부를 합하여 하계면이 되면서 면소 역시 설창마을에 있었다, 이때 설창리와 효동리를 합하여 설창리가 되었다. 1928년 4월 1일 하계면이 진영면으로 개칭되고, 면소는 여래리(지금의 진영농업협동조합)로 옮겨졌다.

죽곡리(竹谷里)

진영읍 죽곡리는 옛 중북면 죽곡리(竹谷里)였으며, 1914년 하계면(下界面)으로 개칭되면서 율리(栗里: 외촌)마을과 유목(楡木)마을을 합하여 하계면 죽곡리가 되었으며, 지금은 유목(楡木), 외촌(外村), 죽곡(竹谷), 세일 등 4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의전리(蟻田里)

옛 중북면 의전리(蟻田里)가, 1914년 중북면과 하계면이 하계면으로 통합되면서 하계면(下界面) 의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은 의전, 등리, 안평, 용암, 은평 등 5개 마을이나 행정구역은 등리, 의전, 안평 등 3개 마을이 있다.

내룡리(內龍里)

1914년 3월 1일 하계면과 붕북면을 병합하여 하계면이 되면서 옛 중북면의 내룡리와 용담리를 합하여 하계면 내룡리가 되었으며, 월파산의 서쪽 계곡을 내룡, 동쪽을 외룡이라 불렀는데, 마을이름에 용이 들어간 것은 지형이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신용리(新龍里)

옛날엔 중북면의 신용리였으며, 1914년 3월 1일 하계면과 중북면을 병합하여 하계면으로 개칭하면서 외룡과 양지마을을 합하여 신용리가 되었다.

여래리(餘萊里)

1914년 하계면(下界面)과 중북면(中北面)을 합하여 하계면이 되면서 대창(大昌), 공정(公亭)마을을 합하여 여래리가 되었으나 지금은 읍사무소의 영향으로 여래1구, 여래2구, 여래3구, 부평1구, 부평2구, 대창, 공정, 기영, 장복1동, 장복2동 등 10개 마을의 행정구역으로 발전하였다.

좌곤리(佐昆里)

진영읍 좌곤리는 옛 하계면(下界面)의 좌곤리가 1914년 3월 1일 광대현(光大峴)마을을 합하여 좌곤(佐昆)마을과 광대현(光大峴)마을로 좌곤리가 구성되었다.

방동리(芳洞里)

1914년 3월 1일 방동리가 동산(東山)마을을 병합하여 방동(芳洞)마을과 동산(東山)마을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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