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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동면은 김해시의 동편 아래쪽에 위치하여 下東面이라고 하며 11個里가 있었는데, 1914년 月堂里와 平村里를 합하여 月村里로 하므로써 10個里가 되었으며, 1944.10.1 面名이 下等과 發音이 같아 대동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서쪽으로는 불암동,삼안동, 북쪽으로는 상동면, 동쪽과 남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부산광역시와 연접하고 있으며,  산해정(도지정문화제125호)과 예안리고분군(사적 261호)이 있는  역사의 고장이다.

연혁

  • 42년 - 금관가야국
  • 971년 - 김해부
  • 1906년 - 김해군 하동면
  • 1914년 - 월당리와 평촌리 통합 10개리 정비
  • 1944년 - 하동면을 대동면으로 개칭
  • 1981년 - 김해군에서 김해시가 분리됨
  • 1995년 - 김해시,군 통합으로 김해시 대동면으로 됨
1969년 대동면사무소 1969년 대동면사무소
1973년 산허리에서 바라본 대동면 1973년 산허리에서 바라본 대동면
대동면 건강걷기대회 대동면 건강걷기대회

우리마을의 특징

대도시 부산과 연접한 평야지대에 개발제한구역이라는 특성을 가진 우리면은 1920년대에 낙동 강변을 농지로 개척하여 1932년 제방을 축조하고, 1967년 대동 운하를 개통하여 농업기반을 구축하였으며, 1970년초 장미재배를 시발로 현재 400여농가에 200ha에 장미, 거베라, 국화, 금어초, 안개꽃, 카네이션, 백합 등을 재배하여 년간 41억 여원의 수출과 국내 꽃 소비량의 8% 정도를 생산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꽃 생산지로 발전되었다.

500여ha의 농지및 132ha 하천부지에 부추, 당근, 배추, 무,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등 각종 채소를 재배하여 복지농촌 건설에 앞장서는 선진농촌 지역이며 선비정신의 표상인 남명 조식선생이 30년간 학문을 연마하고 강학한 산해정(도지정문화제125호)과 가야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 예안리고분군(사적 261호)이 있는 문화유적의 보고인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지명유래

선암

선바위를 칭하는 것으로 고속도로 공사를 하기 전까지 신선바위가 있었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이다. 선바위 고개엔 큰 바위에 3백년 쯤 된 선암대 라는 오래된 글이 새겨져 있다.

주중리

주부동(酒府洞)의 중간마을로 선유동(仙遊洞)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주중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뒷산에 있는 황금술통 모양의 명당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물안

서낙동강가에 있어 수안리를 물안(水安)이라 불렀으며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명산이 많은 마을이다.

주동리

주부동의 동쪽에 있다하여 주동리라 하였다.

안막

기우막이라고 하며 옛날 낙동강 갯벌에 기러기가 많이 날아다녔다. 낙동강변 개간당시 기러기를 지키는 막이 여러곳이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괴정

회나무골이라고 하며 회나무가 있는 우물(槐泉)이 있어괴정(槐井)불렀다.

익등

부채등이며 감내의 위쪽언덕에 있는데 부채를 편것 같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각성산

물속의 달섬으로 불리는 명산이며 산위에 각성(閣城)이라는 성이있어 붙혀진 이름이다.

선무봉

덕산리 뒤쪽에 있는 산인데 선무산(仙舞山)이라고 하며 이 봉우리의 무당바위 아래 날으는 학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飛鶴上天形)의 명당이 있어 붙혀진 이름이다.

몰니등

덕산마을 동쪽에 있는 등성인데 금거북이가 뻘에 뭍혀있는 모양(金龜沒泥形)의 명당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조눌

새누리라고도 하며 모래밭에 후조(候鳥)가 많이 날아와 울음소리가 더듬는것 같다고 하여 새눌이라고도 했다.

감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가운 단샘이 있다하여 감천(甘泉)이라 불렀다.

원지

황산도(國道)의 원(院)인 초령원(草嶺院)이 있던 자리라고 원지(院址)라 불렀다.

시례

시루처럼 생긴 시루봉이 있어 시루골이라 불리다 이것이 변하여 시랫골로 바뀐것이 시례가 되었다.

선만고개

선암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선만정자(船滿亭子)와 선만나루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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