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부의 청사가 있었던 곳으로 부원리 , 영정을 거쳐 1947년 부원동으로 되었으며 1980년대부터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어 신시가지가 형성되었으며, 시청, 세무서, 은행등 주요기관이 집중되어 있고 시의 중심지로서 가락로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상권이 형성되어 있음
현 김해중학교앞에 있었던 큰 못터이다.
이 못은 정조13년(1789) 부사 김우현(金禹鉉)이 읍기(邑基)에 도움이 되고, 부민(府民)에 좋다고 하여 새로 판 못이다.
1956년 4월 못의 북부에 김해중학교가 들어서고, 1977년 2월 김해 도시계획에 따라 완전히 매축되고 그 자리에 1977년 9월 김해군청(현 김해세무서)을 착공하여 1978년 준공되었으나 옛날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현재 부원 8통과 부원9통을 관통해 지나며 북쪽으로는 부원3통과 부원12통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보통 남문밖다리라고 부른다. 1933년 국도개통과 함께 가설되어 오랫동안 김해읍의 입구가 되어왔다. 남쪽은 강창포(江倉浦)에 이르고, 세월이 오래되어 모래가 쌓이므로 정조14년(1790년)에는 내를 곧게 만들었다. 순조(純組) 31년(1831년) 직천(直川)은 읍기(邑基)에 해롭다고 부사 권복(權馥)이 또 다시 곡천(曲川)으로 고쳤다고 한다.
익산(益山)줄기의 끝인데 개가 엎드린 모양 (복구형伏狗形)이라고 개穴이라고도 부른다. 부원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이 산의 남단에 있었던 공동묘지가 없어지고 토취장이 되었다가 그 자리에 시청사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 산은 원뫼뿌리라고 하며 분성산(盆城山)의 산줄기가 남으로 달리다가 좌룡맥(左龍脈) 이 이곳에서 반전返轉하여 읍내를 되돌아보고 있는 형국이므로 고조산顧組山이라 하는것이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이 산에 서낭당 기우단등이 있었다.
남산정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금관가야 시절 김해평야가 바다였기 때문에 당시의 놀이터로 이용되면서 불리워졌던 것으로 추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