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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는 신라시대부터 금관군 또는 금관소경으로 불리워지면서 시작된 유서 깊은 가야 문화의 발상지로서 대도시 부산과 인접된 광활한 김해평야를 소유한 풍요로운 전원 도시이다. 서기 42년에 김수로왕이 가락국을 건국하여 6가야의 맹주국이 되었으나 가락국 10대 구형왕 12년 (서기532)에 신라에 합병 금관군으로 호칭되었으며 삼국통일후 문무왕 20년 (서기 680)에는 김해소경으로 개칭되어 이때부터 김해의 명칭이 최초로 생겼다.
그후 읍.면제 시행에 따라 1931. 11. 1 부로 김해면이 남원, 김제, 순청, 나주, 울산, 삼천포, 홍남과 함께 읍으로승격되어 22개 법정동과 52개 행정동을 설치 운영하여 오다가 김해군 조례 제 340호(76.4.16 공포)에 의거 76. 4. 20 부터 중부, 동부, 서부 출장소를 설치하여 3개의 출장소를 운영하여 오던중 1981. 7. 1 시로 승격되었다. 시 승격시에는 1실 9과 10개동의 하나로 칠산동으로 명명되었고 칠산이라는 이름은 산봉우리가 일곱개 솟아있다고 해서 칠봉산이라 부른 것이 칠산이 되었으며 그 봉우리마다 산아래 우물이 있었다.
또 화목(지금 화목2통) 들앞에는 일곱 개의 둔대(동뫼)를 만들어 갖가지 나무를 심어 칠산이라는 명산을 과시하기도 하였으나 김해부 읍성 서쪽의 부자촌이었으며 도남쪽의 남포(지금 화목3,4통)는 금릉 8경의 하나인 "남포어장"으로도 유명한 어장이었다가 갈대밭 지대로 변하여 해방후 차츰 개간되어 오늘날의 평야를 이룩하였다